나는 언젠가부터, ‘문’이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되었다.
닫히지 않은 문, 혹은 닫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문.
그 문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로 떠났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언제나 마지막 인사가 없었다는 것.
어느 날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는 걸.
그들이 앉았던 의자, 그들이 열었던 창문, 그들이 듣던 음악— 모두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치 문이 닫히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흐르고 있는 것처럼.
나는 가끔, 그들을 다시 떠올린다.
불면의 밤, 피아노가 멈춘 방, 기억이 덜 말라붙은 책상 앞에서 그들 하나하나가 떠오른다.
어릴 적 나와 놀던 친구.
음악을 잃고 주저앉았던 사람.
지하철 역 앞에 오래 앉아 있던 소녀.
아무도 몰래 글을 쓰던 아이.
아무 말 없이 사라진 형.
그리고, 한없이 조용했던 동급생.
나는 그들 각각의 얼굴에 문이 하나씩 열려 있음을 본다.
그 문은 닫히지 않았다.
닫으려 해도 닫히지 않는, 무언가 빠져나간 자리.
어느 날, 나는 거울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내가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도 있었다.
내 눈동자 안 어딘가에 그들이 남긴 조용한 감정의 조각들이 있었다.
‘당신이 나 대신 살아주었으면 해요.’
‘당신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못했던 말을 당신이 대신해줬으면 해요.’
나는 그런 목소리들을 상상했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조용한 유서 같은 것들.
우울은 물처럼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물은 한 번도 완전히 마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지?”
하지만 그건 마치 비가 그친 다음날에도 신발 속이 여전히 젖어 있는 감각과 비슷했다.
나의 마음속 어딘가는 아직도 눅눅했다.
그들은 떠났지만, 남겨진 감정들은 여전히 내 안에 흘러 다녔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그 말은 너무 날카로웠고, 누군가의 절망을 잘라내 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진짜 위로는, ‘다 괜찮아질 거야’가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네가 있어도 괜찮아’라는 말이었다는 걸.
나는 자주 길을 걷는다.
의미 없이, 목적 없이.
누군가의 흔적을 따라 걷는 것처럼, 또는 내 안의 파편을 다듬기 위해 걷는 것처럼.
그 길 위에서 나는 때때로 그들의 그림자를 만난다.
길모퉁이에서 잠시 서 있던 사람, 지나가는 트럭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속으로만.
“잘 있었어?”
“오늘은, 좀 덜 아팠니?”
“아직 그 문은… 열려 있니?”
나는 한 아이의 편지를 떠올린다.
그 아이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사라졌지만,
나를 본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한,
나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참 울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문장을 되뇌었다.
기억은, 남은 이들이 완성해 주는 형태다.
우리는 그들의 마지막을 직접 듣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자리를 기억함으로써 그 존재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닫히지 않은 문 앞에 서 있다.
그 문은 이따금 삐걱이며 흔들리고, 때로는 아주 작게 열리기도 한다.
문을 열면, 그 안엔 과거가 있다.
지워지지 않은 이름들, 지워지지 않은 감정들, 지워지지 않은 문장들.
그 방은 가끔 너무 어둡지만,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날도 있다.
그 빛은 그들이 남긴 단어, 그들이 바라보던 하늘, 그들이 듣던 음악에서 흘러온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닫지 않기로 했다.
닫힌다는 것은 끝이라는 뜻이기에.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보고, 기억하고, 조용히 말해줄 것이다.
“너는 사라진 게 아니라,
여기 남아 있어.”
“내 안에, 이 공간 안에,
아직도 살아 있어.”
나는 가끔, 누군가 아주 천천히, 그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묻는다.
“지금도 아프니?”
“그래도, 여전히 살아 있니?”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응.
아직 다 아물진 않았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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