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세상이 나를 거부한다고 믿었다.
아침의 빛은 너무 눈부셔서 차라리 어둠 속에 있고 싶었고,
사람들의 웃음은 너무 멀리 있어서 닿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 자신과 싸우는 전쟁.

그 시절의 나에게 누군가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다면,
아마 웃었을 것이다.
그 말은 너무 멀었고, 너무 가벼웠다.
나는 이미 ‘괜찮다’는 단어의 무게를 믿을 수 없었다.
그 말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소리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나는 단지 살아 있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파서, 버겁고, 길을 잃은 채로도
어디선가 ‘살고 싶다’는 미약한 불씨 하나가 남아 있었던 것을.

자해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라며 하는 행동이다.
그건 자신을 파괴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신호였다.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대신,
“이 고통을 봐주세요”라고 몸으로 말하는 절규였다.

그 말은 나는 너무 늦게 이해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벌주고 있었다.
잘못한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벌이 아니라, 도움 요청의 또 다른 형태였다는 걸.
아무도 듣지 않는 곳에서 터져 나온,
‘살고 싶다’는 가장 간절한 형태의 울음이었다는 걸.

어느 날, 나는 문득 손등 위의 작은 흉터를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옅어지고, 살이 차오르고,
그 흔적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 자리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건 상처가 아니라, 내가 견뎌낸 증거구나’

그때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버틴 거였다.
그 버팀 속에는 절망도 있었지만,
어느새 작은 희망의 뿌리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세상이 너무 커서,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고,
그 안에서 숨이 막히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나도 똑같이 생각했다.
‘이젠 끝났어’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건 기적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히 기적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상처’라는 단어는 참 부드럽다.
그 안에는 이미 아픔이 있다는 전체를 담고 있으니까.
상처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그 증거가 있다는 우리가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죽은 마음은 상처조차 없다.
그러니 당신이 아직 아프다는 건,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건 고통의 표식이 아니라, 생의 흔적이다.

나는 이제 상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건 내가 견디며 살아낸 시간의 무늬니까.
흉터가 남아 있다는 건
당신이 싸움을 끝내고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귀환의 징표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
“그럴 필요 없잖아”
하지만 그런 말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이해보다 판단이 먼저 오는 세상 속에서
누구도 진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결과만 본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얼마나 외로웠나요?”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나요?”
“얼마나 울음을 참았나요?”

그 질문을 누군가 진심으로 해준다면,
아마 세상은 조금은 덜 잔인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완벽하게 괜찮지는 않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무너지고,
어둠이 다시 다가올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젠 그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을 줄 안다는 것이다.

그건 아주 작은 차이일지 모르지만,
그 차이가 나를 살게 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직 길을 잃은 채 그 어둠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자.
그 어둠은 당신을 삼키지 위한 게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의 빛을 찾게 하기 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깨달았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나 조용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그건 누구의 외침도, 명령도 아니었다.
단지 아주 작은 따뜻함으로 찾아온다.
눈물이 마른 자리에 남은 한 줌의 숨결처럼.

그리고 나는 그 따뜻함을 믿기로 했다.
세상은 여전히 냉혹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글을 쓰고,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군가는 내 이름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혹시 당신이 오늘도 울고 있다면,
괜찮다.
울어도 된다.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건 당신이 여전히 느낄 줄 안다는 증거니까.

그리고 언젠가 눈물이 멈출 때,
그 자리에 작고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알게 될 거다.
‘아, 나 아직 살아 있구나.’

그 한마디가,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큰 힘이 된다.

이 글이 완전한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당신이 너무 깊은 어둠 속에 있을 대
조금이라도 손끝의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당신의 상처를 모른다.
하지만 그 상처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는 안다.
그 마음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이미 잘 버텼어요”
“이제는 조금만, 나 자신에게도 따뜻해져 주세요”

당신의 흉터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에요.
그건 살아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늬에요.
그 무늬가 언젠가 누군가의 빛이 되기를.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당신이 조금은 덜 아프기를.

제발,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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