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리는 고요했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가끔 어딘가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건물 외벽의 환풍기들이 낮은 숨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도시는 자고 있었지만, 완전히 잠들진 않았다.
마치 이 도시도, 그 자신처럼, ‘잠드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불면이었다.
정확히는,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잠들기를 거부하는 몸이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아도, 뇌는 꺼지지 않았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낱낱이 재생되었고, 어쩌면 벌어질지도 모르는 내일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처럼 반복되었다.
가슴은 묘하게 두근거렸고, 손끝은 차가웠으며, 눈꺼풀은 무겁지만 마음은 깨어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은 길었다.
그는 자주 창문을 열었다.
도심의 고층 아파트, 열다섯 층 높이의 방 안에서 창문을 열면 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그 바람은 낮보다 훨씬 정직했다.
비행기 소리도, 사람의 목소리도,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바람과, 도로 위 희미한 전조등 불빛들.
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시간에도 나처럼 깨어 있는 사람이 있을까?”
“혹시 누군가는 지금 울고 있지 않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외로움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불면의 시작은 오랜 시간 전이었다.
처음엔 그저 밤이 아까워서 늦게까지 깨어 있었고, 그다음엔 깨어 있는 습관이 생겼고, 그 습관은 이내 고장이 되었다.
이따금은 불을 끄고 눈을 감은 채, 자신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의식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무력해지기를.
아무 감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공중에 흩어지듯이.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어딘가는 더 날카로워졌다.
잠들지 못하는 몸은 감정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고, 그 선명함은 오히려 고통에 가까웠다.
그는 그런 자신이 싫었다.
잠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생리적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그는 새벽 4시 무렵 옥상에 올라갔다.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빛은 줄었지만 꺼지지 않았고, 빌딩의 창문 몇몇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불빛들이 마치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다.
그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그 불빛을 하나씩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그는 그렇게 수십 개의 창을 세다가 중간에 멈췄다.
어떤 창문은 커튼이 비쳐 있었고, 어떤 창문은 식탁 위의 그릇이 보였고, 어떤 곳은 모니터 불빛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는 그 빛 속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 상상했다.
잠 못 드는 누군가가 노트북 앞에서 일기를 쓰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울음을 삼키며 바닥에 앉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 모든 가능성이, 그에게는 위로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그 문장은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구원이 되었다.
불면의 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종종, 존재하지 않는 대화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괜찮니?”
“잠 못 잤구나.”
“여기 누워도 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말들이 들리는 듯했다.
누군가 그를 이해해주고 있다는 상상.
그는 그 상상 속에서 잠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비록 잠들지는 못해도, 그 ‘감정적인 쉼’만으로도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거리로 나갔다.
잠들지 못하는 대신, 걷기로 했다.
가로등이 켜진 인도, 텅 빈 횡단보도, 밤샘 편의점 앞의 형광등 아래.
그곳은 밤의 도시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몇몇 낯선 이들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낀 채 걸었고,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떤 이는 골목길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혼자 웃었다.
그는 그 모든 사람들을 향해 속으로 말했다.
“당신도 잠 못 드는 사람이군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반갑습니다.”
새벽이 되면,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도, 눈을 감아도, 마음속 어딘가는 여전히 밝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질문했다.
“왜 나는 잠들지 못하는 걸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에게는 ‘편안함’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라졌다는 걸.
어떤 자세도, 어떤 음악도, 어떤 빛도 더는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몸은 기대지 못하고, 마음은 내려놓지 못하고, 그 모든 불안이 깨어있는 밤을 반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오래된 일기장을 꺼냈다.
어릴 적 썼던 노트였다.
거기엔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밤은 괜찮다. 세상이 조용해지고, 나만 남는 느낌이 좋아.”
그는 한참을 그 문장을 들여다봤다.
지금의 자신은 그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지금의 밤은 너무 무겁고, 조용한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었다.
나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나만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썼던 자신은, 그때만큼은 밤을 사랑했었다.
그 감정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했다.
“혹시, 언젠가는 다시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밤이 무섭지 않고, 외롭지 않은 날이 올까?”
“잠이,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날이.”
그는 그 상상을 조용히 접고, 불을 껐다.
오늘도 잠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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