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히는 것도, 질식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너무 조용했다.
소리는 멀리서 웅웅 울렸고, 움직임은 한결같이 둔했다.
감각은 늘 한 박자씩 늦게 따라왔다.
세상과 얇은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리된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
살아낸 게 아니었다. 그저, 버텼을 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도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피곤하다고 여겼다.
잠을 덜 자서 그런가, 일이 많아서 그런가.
여러 번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늘 희미했고… 결국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남의 말이 잘 ‘안 느껴진다’는 걸.
소리가 아니라
말에 담긴 마음. 감정, 온기 같은 것들.
“요즘 어때?”
“밥은 먹었어?”
“뭐 필요한 건 없어?”
그는 늘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고.
“괜찮아요.”
그 말은, 그 자신에게조차 낯설었다.
입은 움직였지만, 감정은 따르지 않았다.
목소리는 공허했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퍼지는 둔탁한 울림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왜 이렇게 조용해졌느냐고.
예전엔 더 말이 많지 않았느냐고.
괜찮아 보여도, 정말 괜찮은 거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감정을 꺼내 보이는 일은 번거롭고, 피로했다.
꺼내면 누군가는 반응했고, 그 반응은 또 다른 감정을 낳았다.
그 지독한 순환이, 그는 지겨웠다.
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말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은 조금씩 말랐다.
그리고 메마름이 익숙해지자, 외로움조차 흐려졌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외로움을 느낄 줄조차 몰랐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았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 거울 속에 있는 그를 보았다.
투명했다.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고, 입술엔 기색이 사라져 있었다.
무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표정도 아니었다.
그는 한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때 마음 한편에서 문장 하나가 스쳤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게 맞는 걸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아니, 해도 소용없었다.
물속에선 자기 말조차 멀리 흩어져 버리니까.
그는 그날 이후, 거울을 잘 보지 않았다.
겉으로만 보면 그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출근하고, 보고서 쓰고, 점심을 먹고, 퇴근했다.
주말엔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움직임이, 마치 깊은 물속에서 천천히 팔을 젓는 것처럼 느리고 무겁고,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걸.
그래서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가끔 그는 수족관에 갔다.
그곳이 편했다. 이상할 만큼.
두꺼운 유리벽 너머, 물고기들이 말없이 유영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치 그가 대신 숨쉬는 것 같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표정도 없었다.
그저 흘렀다.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해 보이는 생명체들.
그게 부러웠다.
사람이라는 이름 없이도 괜찮은 존재들.
그는 유리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멀리서 보면, 수조 속 물고기가 아니라 유리 밖의 그가 전시된 사람 같았을 것이다.
움직이긴 했지만,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사람.
어쩌다 아주 선명한 꿈을 꾸는 날이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감정이 자유롭게 흘렀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가장 괴로웠다.
현실은 여전히 물속이었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게 빠져나갔다.
다시 잠들고 싶어도… 가지 못했다.
깨어 있는 건 언제나, 추락이었다.
아주 깊고 긴, 낭떠러지 아래로.
어느 날, 회사 복사기 옆에서 종이 한 장을 주웠다.
누군가 실수로 출력했는지,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 요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무언가 잘못된 걸 아는데, 움직일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는 종이를 오래 바라봤다.
자기가 쓴 것도 아닌데, 너무 낯익었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는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오늘 이상하게 낯익은 문장을 봤어.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던 말이었는데, 누군가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 그게, 나를 좀 흔든 것 같아.
생각보다 많이.”
그 편지는 어디에도 보내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서랍에 넣었다.
그 순간, 그는 아주 잠깐, 조금은 덜 투명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이면 그는 혼자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흐릿했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모든 소음이 묻혔다.
그럴 때면, 잠깐… 정말 잠깐, 물 밖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가 얼굴을 때릴 때, 차가운 감각이 마음까지 스며들었다.
‘아… 나, 아직 뭔가를 느낄 수 있구나.
감각이 다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그는 그 사실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다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갔다.
‘이 물속에서, 나는 언제쯤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은… 점점 더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인데.’
어느 오후, 그는 회사 옥상에 올랐다.
하늘은 맑지도, 흐리지도 않았다.
바람은 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기분이 가슴 어딘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 아직 여기에 있어.”
그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또렷했다.
마치 물 밖에서 꺼낸 말처럼.
우울은 그에게 물속이었다.
모든 감정과 연결이 끊긴 채, 조용히 가라앉는 시간.
그런데 아주 가끔, 그 물속에도 빛이 들어왔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물결을 일으키는 빛.
그 빛이 그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릴 때, 그는 아주 조용히, 자신을 증명했다.
‘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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