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사를 쓸 때 분위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눈을 감으면 어떤 공간이 먼저 떠오른다.
공기의 온도, 빛의 색, 그 안에 서 있는 나.

나는 대부분 관찰자다.
상상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본다.
그 편이 더 정확하다고 느꼈다.
감정이 흘러넘치지 않게,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그렇기에 세밀한 조율이 가능하니까.

예전의 공간은 많이 어두웠다.
비가 내리고, 무언가가 사라지고, 날카로운 것들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런 노래를 오래 썼다.
쓰고 나면 더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우울한 노래를 쓰다 보니 내가 더 우울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조금은 다른 쪽을 써야겠다고.

처음엔 억지로 썼다.
마음은 아직 어둡고 흐린데, 가사만 밝은 척 하며 썼다.
햇빛을 쓰고, 웃음을 쓰고, 무지개를 썼다.

그 문장들을 여러 번 지웠다.
단어 하나를 바꾸고, 다시 읽고, 어색하면 또 고쳤다.

한 줄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게 정말 내가 쓸 말인지, 괜히 예쁘게 꾸민 건 아닌지.
소리 내어 읽어보고, 멜로디 위에 얹어보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시 지우고 썼다.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이 의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밝은 장면들을 계속 상상하다 보니 내 감정도 조금씩 따라 움직였다.
억지로 시작했던 빛이 지금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더 가라앉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예전의 나에게 이런 장면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

그래도 나는 어두운 시절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도 결국 나였으니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밝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사는 감정을 과장하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이 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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