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은 흔히 독립을 기념하는 날로 불린다.
그날의 선택이 옳았는지,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독립은 선언되었지만 곧바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는 걸까.
이미 이룬 역사일까, 아니면 실패를 알면서도 선택했던 그 순간일까.

1919년 3월 1일,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상황을 몰라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했을 때의 위험과, 침묵했을 때의 안정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선택은 침묵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그렇다면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킬 수 있는 삶과, 말함으로써 잃게 되는 삶 중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 선택이었는가.

삼일절을 지나며 우리는 태극기를 단다.
하지만 태극기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국가라기보다, 그날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불완전한 선택의 무게에 가깝다.
국가 이전에, 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선택들 말이다.

그날의 만세는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외부의 억압을 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두려움을 넘기기 위한 외침이었을까.

오늘의 우리는 다른 조건 위에 서 있다.
말하지 않아도 즉각적인 위험이 따르지 않는 시대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쉽게 침묵을 선택한다.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유는 많고, 침묵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모든 침묵은 정말 불가피한가.
모든 회피는 정말 중립적인 선택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과연 정말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일까.

말했을 때의 무게와, 말하지 않았을 때의 무게는 지금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말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 그날을 지나며, 우리가 어떤 침묵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잠시 돌아보게 할 뿐이다.

지금의 나는, 말할 수 있음에도 말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위험하지 않음에도 침묵을 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라면 그날,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그리고 오늘,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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