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잃고, 또 무언가를 흘려보내며 살아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오래도록 미세한 먼지처럼 마음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불현듯 사라져버리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 빈자리를 느끼게 된다.

아침 햇살에 금세 증발하는 물기, 손등에 잠시 머물던 온기, 말끝에 걸렸다가 스르르 떨어지는 미소 같은 것들.
그런 조각들은 다 사라지는 것이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헛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사라짐은 때때로 성장을 밀어 올리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한때는 너무 선명해서 감히 손댈 수 없었던 감정들이 어느 날엔 희미해지고, 또 며칠 지나면 아예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다.
그 과정은 슬프기도 하고, 때론 이상하게도 편안하다.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아프기만 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나를 살게 하는 경우도 많다.
사라짐은 상실이 아니라 변형일지도 모른다.
형태를 바꿔 다른 자리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는.

정작 가장 아쉬운 건, 사라짐이 찾아오는 순간을 우리는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제까지 내 옆에 있었던 풍경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이고, 한때 너무 익숙했던 사람의 목소리가 어느 날은 기억 깊은 곳에서 흔들리며 사라지고, 나를 오래 괴롭히던 불안조차도 어느 날 문득 그 자리에 없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것들이 하루 사이에도 조용히 사라지지만, 우리는 늘 한참 뒤에서야 그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사라지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못하겠다.
사라짐이 있다는 건 머물렀던 순간이 있었다는 뜻이고, 머물렀던 것들은 모두 나의 시간과 감정을 지나 어느 한 부분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사라지기 전의 모든 순간은 여전히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
형태만 잃었을 뿐,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어쩌면 우리를 너무 무겁게 해주지 않게 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전부를 안고 살아가기엔 인생이 생각보다 좁고, 마음은 생각보다 연약하니까.
그래서 떠나는 것들과 남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균형을 배우고, 그 틈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걸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것들은 무섭지만, 동시에 다정하다.
우리를 놓아주고, 우리를 가볍게 하고, 어떤 날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받아들인다.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고 사라지기 전 잠시 머물렀던 모든 따뜻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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