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하나가 바다 위를 떠다닌다.
뚜껑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파도는 그 사실에 별 관심이 없다.

병은 떠 있는 쪽을 택하지 않는다.
밀리는 대로 가고 뒤집혔다가 다시 바로 선다.
안이 비어 있어서 가라앉지는 않는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병 속으로 빛이 들어온다.
물결에 부서진 빛이 안쪽 벽을 긁고 지나간다.
한때는 누군가의 손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파도는 병을 조심히 다루지 않는다.
부딪히고 끌고 가고 놓아버린다.
깨질 법도 한데 아직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안에는 편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인지 병이 가볍다.
목적 없이 떠도는 일에 딱 맞는 무게다.

어느 날은 해류에 실려 멀리 가고, 어느 날은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 차이를 병은 알지 못한다.

밤이 되면 병은 바다색을 닳고 낮이 되면 하늘을 담는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들어오는 것들로 바뀔 뿐이다.

멀리서 보면 쓰레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까이 가면 괜히 손을 뻗고 싶어진다.
하지만 바다는 그 손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유리병은 오늘도 떠 있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 무언가를 전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저 깨지지 않은 채로, 아직 떠 있을 수 있는 상태로 파도 위를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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