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일 아침 9시 17분에 창가에 선다.
커튼은 반쯤만 젖혀져 있고, 유리는 손때와 먼지로 뿌옇다.
닦아야지, 하는 생각은 언젠가부터 사라졌다.
한 번은 손을 들어 유리를 문질러보다가 멈춘 적이 있다.
깨끗해진 틈 사이로 보인 세상은, 이상하게 더 아팠기 때문이다.
안개가 낀 창으로 보는 세상은 멀고, 그래서 덜 아팠는데.
사람들은 그를 ‘창밖을 보는 남자’라 부른다.
그는 13층에 산다. 높은 곳이지만 특별히 좋은 뷰는 아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작은 놀이터, 오래된 단지, 공원 둘레길, 그리고 뻗어 있는 도로. 택배 차량이 매일 그 길을 돌아 들어오고, 유모차를 끌며 엄마들이 길을 조심조심 건넌다. 저 멀리 초등학교가 보이고, 가끔 늦잠 잔 아이가 책가방을 흔들며 뛰어가는 게 보인다.
정확히 9시 17분. 알람을 맞춘 적도 없는데 그 시간만 되면 이상하게 몸이 알아서 일어난다. 눈을 비비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창가에 선다. 마치 ‘살고 있다’는 걸 확인이라도 하듯.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멀게 느껴지고, 그래서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가끔 누가 묻는다.
“왜 그렇게 매일 창밖을 보는 거예요?”
“누구 기다리고 있어요?”
“이런 데 혼자 오래 있으면 우울해져요. 밖으로 좀 나가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 말을 해봤자 전해지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왜냐하면 감정은 복잡하고, 언어는 너무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우울이란 건 ‘상태’보다 ‘느낌’에 가깝고, 그 느낌은 하나의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말로 꺼내는 순간, 그 감정은 쉽게 작아지거나 오해받는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도 다행이네, 그 정도면.”
그런 말들이 오히려 마음의 어두운 무늬들을 짓밟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도 한때는 길을 걷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친구랑 웃고, 버스를 타고 아무 데나 내리던 사람이었다.
근데 어느 날부터인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 대화소리, 휴대폰 진동소리, 광고, 웃음소리, 음악.
전부 하나의 거대한 소음처럼 덮쳐와 그를 질식시켰다.
마치, 쉴 틈 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처음에는 그저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잠을 설쳐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흘러도,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몸은 멀쩡했지만 마음 어딘가가 찢긴 느낌이었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커튼을 쳤고, 음악은 귀를 찢는 듯해서 이어폰을 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걸 멈췄다.
일을 그만두고, 전화를 끄고,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방 안에서 멈춘 시간은… 뭐랄까.
썩은 건 아니지만 따뜻하지도 않은, 냉장고 안에 오래 둔 음식 같았다.
창가에 서기 시작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무심코 커튼을 젖혔는데, 아침이 와 있었다.
놀랐던 건…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길을 걷고, 차가 지나가고, 멀리서 아이가 뛰어노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좀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구나.’
그건 쓸쓸한 위로이기도 했고, 동시에 이상한 해방감이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서게 된 건.
어느 날, 맞은편 빌라 창문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머리를 땋았고, 연보라색 머리끈을 한 가느다란 손목.
그는 얼어붙었다.
누군가에게 ‘보였다’는 게, 낯설고 묘하게 무서웠다.
그날 이후, 소녀는 창에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아침.
작은 구름, 강아지, 별, 네잎클로버 같은 것들.
어느 날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여기선 봄이 보여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 안쪽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봄.
그에게는 너무 오래된 계절.
이름만으로도 너무 먼 단어 같았다.
따뜻하다기보단 지나가버린 감정 같은 단어.
그런데 누군가, 그 계절을 창문 너머에서 꺼내 보여줬다.
말도 없이, 특별한 표현 없이, 그냥 존재로서.
며칠을 고민하다 그는 작은 포스트잇에 한 줄은 적었다.
“정말요?”
그날부터, 둘은 말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소녀는 “오늘은 흐려요”, “무지개를 그렸어요”, “엄마가 쿠키를 구웠어요” 같은 걸 붙였고,
그는 “좋겠네요”, “무지개는 본 지 오래됐어요”, “쿠키 냄새가 날 것 같아요” 같은 짧은 문장을 적었다.
소녀가 누군지는 몰랐다.
어디 사는지도.
근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을 몰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통이란 꼭 상대의 이름을 알아야만 성립되는 건 아니었다.
말이 없어도, 그저 존재만으로도.
이제 그는 창가에 서는 이유가 달라졌다.
세상이 아니라, 그 작은 문장 하나를 보기 위해.
외로움은 여전했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무언가가 이어진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우울은 없애는 게 아니라, 숨 쉴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걸.
그 자리는 생각보다 사소한 틈에서 생긴다.
예컨대 먼지 낀 창문 너머 같은 데서.
어느 날, 소녀의 창은 닫혀 있었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스티커는 그대로였지만, 새로운 문장은 없었다.
괜히 걱정이 들었다.
이사를 간 걸까? 아픈 걸까? 그냥.. 지겨워진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는 창문에 한 줄을 붙였다.
“오늘도 나는 여기에 있어요.”
그리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예전처럼, 그저 창밖을 보면서.
어쩌면 그 문장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매일 확인시켜주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게 맞는 걸까”
“그냥… 아직, 있긴 하네.”
밤이 깊어지면, 창문은 거울이 된다.
그는 어두운 방 안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가끔은 불안에 떨고,
또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다.
그러다 조용히 속으로 묻는다.
“오늘도 나는… 존재했을까..?”
그리고 천천히, 작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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