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과 이별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 하나였다.
우리는 왜 같은 ‘떠남’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을까.
이별은 대게 갑작스럽다.
마음이 정리되기 전에, 준비되지 않았을 때 등을 돌린다.
버티다 버티다 더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떠나는 쪽을 택한다.
그 순간에 살아나는 것이 먼저라 말은 줄어들고, 감정은 날이 선다.
그래서 이별에는 설명 대신 침묵이 남고, 침묵 대신 후회가 남는다.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 말을 하지 못했을까, 왜 조금만 더 참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까지 참았을까, 왜 한 번 더 붙잡지 않았을까, 왜 더 버티지 못했을까.
이별은 시간이 지나도 자주 되돌아와 묻는다.
반면 작별은 다르다.
작별은 준비가 필요하다.
마주 앉을 용기, 상대를 한 번 더 바라볼 힘, 좋았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을 마음.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은 눈을 마주친다.
그래서 작별에는 설명보다는 인사가 남는다.
고마웠다는 말, 미안했다는 말, 그리고 더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담담한 인정.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 정도의 솔직함.
이별은 관계를 끊어내고, 작별은 관게를 정리한다.
이별이 단절이라면, 작별은 정리다.
그래서 이별은 시간이 지나도 불쑥 아픈 방면, 작별은 덤덤하다.
물론 우리는 늘 작별을 선택할 수는 없다.
어떤 순간에는 이별만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일 때도 있다.
그때의 이별은 비겁함이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텨온 사람의 마지막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별을 했다고 해서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 마음이 조금 덜 아플 때, 그 이별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때는 작별을 해도 좋겠다.
상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자기 자신에게라도 건네며 그 시간과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 것.
작별과 이별의 차이는 결국 태도의 차이다.
떠나는 순간의 모양이 아니라 남겨진 마음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도망치듯 두고 오느냐, 아프더라도 정중히 내려놓느냐.
그리고 이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관계를 대충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아닐까.
사람과 시간 앞에서 성실하게 애썼다는 흔적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괜찮다.
어떤 이름의 떠남이었든, 당신은 충분히 사랑했고, 헤어졌고, 지금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작별은 언젠가 상처가 아니라 인사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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