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의 경험 이후, 나는 다시 위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아주 느리고 힘겹게 나아갔다. 심연의 깊은 어둠과 짓누르는 압력에서 벗어나자 몸은 조금 가벼워진 듯했지만, 여전히 무거웠다. 심연의 차가움이 아직 몸속 깊숙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주변의 어둠은 조금씩 옅어졌지만, 여전히 희미한 푸른빛만이 감돌뿐이었다. 쉼 없는 바다의 소음이 아주 희미하게,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내 익숙한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지만, 심연에서 들었던 희미한 노랫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는 쉼 없는 바다의 소음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들려왔다.

마침내 나는 쉼 없는 바다의 표면 근처로 돌아왔다.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고, 수많은 고래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맹렬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풍경. 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심연에서 마주했던 나 자신, 그리고 희미하게 들었던 '잃어버린 노래'의 조각들이 나의 눈과 귀를 바꿔놓은 것 같았다. 세상은 예전과 같았지만, 나 자신이 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다름은 쉼 없는 바다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심연에 가라앉기 전보다 더 힘든지도 몰랐다. 쉼 없는 바다의 현실은 냉혹했다. 다른 고래들은 여전히 맹렬하게 경쟁하며 나아갔고, 세상은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했으며, 나에게는 무관심했다. 그들의 빠른 속도와 거침없는 움직임을 볼 때마다 다시 무력감이 밀려왔다. '나는 왜 저들처럼 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심연에서 벗어났지만, 쉼 없는 바다의 압박감은 또 다른 형태로 나를 짓눌렀다. 예전에는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면, 이제는 마음을 다잡는 것이 힘들었다. 심연에서 얻은 깨달음과 이 현실 사이의 괴리가 나를 괴롭혔다. 심연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을 희망을 보았지만, 쉼 없는 바다의 소음 속에서는 그 희망이 너무나 작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심연에서 들었던 '잃어버린 노래'를 다시 부르려는 시도는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소리는 갈라졌고, 멜로디는 불안정했다. 내가 내는 작은 소리는 다른 고래들의 힘찬 노랫소리, 거친 물살 소리, 바다의 소음 속에 쉽게 묻혀버렸다. 아무도 나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듣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속도로, 자신들의 노래를 부르며 나아갈 뿐이었다. 어떤 고래는 나의 서툰 노랫소리를 듣고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했고, 어떤 고래는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들의 눈빛과 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네 노래는 이상해. 여기서는 그런 노래를 부르면 안 돼. 우리처럼 해. 우리처럼 빠르게 헤엄치고, 우리처럼 큰 소리로 노래해.'
그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 나의 노래는 이 바다에 어울리지 않는 건가. 심연에서 들었던 그 소리는 착각이었을까? 나는 그저 쉼 없는 바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실패작일 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포기하고 싶어졌다. 이 모든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때로는 심연으로 다시 가라앉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곳은 적어도 나를 비난하는 소리는 없었으니까. 그저 고요함만이 있었으니까. 그곳에서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적어도 세상의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로웠다. 예전처럼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도 있었다. 생각 없이, 그저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던 그때가 차라리 편했던 것 같기도 했다. 나 자신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나의 텅 빈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하지만 심연에서 들었던 희미한 노랫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했던 '진짜 나'를 잃어버렸다는 공허함이 나를 붙잡았다. 그 끔찍한 공허함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쉼 없는 바다의 소음 속에서도, 다른 고래들의 비난 속에서도, 아주 작게 들려오는 소리. 심연의 고요함 속에서 들었던 그 소리. 그것은 속삭이는 듯했다. 세상의 소음과는 다른, 아주 작고 부드러운 소리. '괜찮아. 네 속도로 가. 다른 고래들을 따라 할 필요 없어. 네 노래를 불러. 네 목소리로.'
그 소리는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나의 서툰 노래를 비웃지 않았다.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응원하고 격려할 뿐이었다.
'너는 너야. 네 방식대로 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나의 유일한 지지자이자,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바닷물이 아가미를 통해 들어왔다 나갔다. 심연의 압력과는 다른, 쉼 없는 바다의 익숙한 압력. 그리고 결심했다. 다른 고래들과 경쟁하며 그들의 물살에 휩쓸리는 대신, '나만의 물살'을 만들며 나아가기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그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여전히 두려웠고, 여전히 외로웠다. 다른 고래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고, 그들의 무관심이 나를 찌르는 것 같았다.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배웠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면 길을 잃거나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진짜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심연에서 느꼈던 그 끔찍한 공허함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노래를 찾고 싶었다. 나의 존재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쉼 없이 나아갈 때는 그저 지나쳤던 풍경들. 그저 목표 지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알 수 없었던 세상의 모습. 바다 깊은 곳에 피어난 이름 모를 산호의 아름다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산호초의 복잡하고 섬세한 구조. 형형색색의 작은 물고기 떼가 만들어내는 반짝임. 그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는 모습은 쉼 없는 바다의 고래들과는 다른, 자유로운 춤 같았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수면을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물결무늬의 황홀함. 빛줄기가 어둠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계단 같았다. 때로는 바위틈에 숨어있는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고 연약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거친 바다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그들은 쉼 없는 바다의 경주에는 관심 없는 듯, 자신만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쉼 없이 나아갈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작은 아름다움 들이었다. 세상은 쉼 없는 바다와 다른 고래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다름'의 가치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너도 너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나는 잃어버린 노래를 부르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나만의 물살 속에서, 다른 고래들의 소음에서 조금 벗어나자 나의 작은 목소리가 조금 더 잘 들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했지만, 멜로디를 떠올리고 목소리를 내는 과정 자체가 '진짜 나'의 윤곽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심연에서 들었던 희미한 소리가 조금씩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목소리가 나의 몸 안에서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나'라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노래가 끊기기도 하고, 음정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노래였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면의 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나만의 소리를 내는 것 자체라고. 나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 자체라고.

다른 고래들은 여전히 나에게 무관심했다. 어떤 고래는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했고, 어떤 고래는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들의 시선과 소음 속에서 흔들릴 때도 있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이 바다에서는 저들처럼 되어야만 하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무리에서 벗어난 나는 약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뒤처진 고래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시선은 나에게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심연에서 얻은 깨달음과 내면의 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경주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나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이었다. 나의 가치는 그들의 시선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물살을 만들며 나아갔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깊은 곳으로, 때로는 얕은 곳으로.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했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내면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다. 낯선 해류에 휩쓸리거나, 위험한 포식자를 만나기도 했다. 길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쉼 없는 바다의 예측 불가능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 안의 힘을 믿고 헤쳐나갔다. 그것은 쉼 없는 바다에서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길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나 스스로의 힘이었다.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여정. 그 여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는 법을 배웠고, 길을 잃었을 때 나만의 나침반을 찾는 법을 배웠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며 나아가는 이 힘겹지만 의미 있는 여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고래들의 시선과 무관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면 소리 따라 자신만의 길 나아가는 힘겹지만 의미 있는 여정. 그것이 나의 현재였다. 나는 아직 '잃어버린 노래'를 완전히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만의 물살을 가르며.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노래를 부르며 나아가는 이 과정 자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으니까. 나의 발자국이 만들어내는 나만의 물길. 그 물길을 따라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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