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 하나가 있다.
연락처 목록에서 이름 없이 숫자만 남아 있는 번호.
왜 이렇게 저장돼 있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 숫자들을 외우고 있었다.
손이 먼저 움직일 만큼.
가끔 실수로 눌릴까 봐 화면을 조금 더 조심해서 누른다.
이 번호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대부분 잊었다.
웃었는지, 다퉜는지, 길게 통화했는지도 선명하지 않다.
다만 자주 걸었었다.
지금 걸면 연결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걸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지우면 될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남겨두는 게 의미 있어서도 아니고 정리할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은 아닌 것 같아서.
숫자는 늘 같은 표정이다.
기다리지도 않고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지우기 어렵다.
오늘도 연락처를 스크롤하다가 잠깐 멈췄다.
화면을 끄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일을 했다.
나는 오늘도 전화하지 않는 선택과 지우지 않는 선택 사이에서 그냥 이 번호를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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