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깊은 '심연' 속에서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떴다는 표현이 맞을까. 이곳은 너무나 어두워서 눈을 감든 뜨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시각이라는 감각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곳. 쉼 없는 바다의 소음은 완전히 사라졌고, 오직 고요함만이 나를 감쌌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깊은 고요함. 세상의 끝이자, 모든 것이 멈춘 곳 같았다. 위에서 쏟아지던 햇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짙은 어둠만이 나를 감쌌다. 손을 뻗어보아도 내 지느러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홀로 존재했다. 쉼 없는 바다에서는 수많은 고래들 속에서 외로웠지만, 이곳 심연에서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은 차가운 물처럼 내 몸속 깊숙이 스며들어왔다. 뼛속까지 시린 외로움이었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듯한 기분. 아니, 세상 자체가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영원히.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니, 쉼 없는 바다에 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무거움이었다. 이곳의 수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온몸이 짓눌리는 듯한 압력. 마치 거대한 바위 아래 깔린 것처럼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아가미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폐가 쪼그라드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피부는 차갑다 못해 아플 지경이었고, 근육은 돌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다. 움직이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이 어둠과 압력 속에 갇혀버린 듯했다. 몸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심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했다. 거대한 어둠 속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무거운 점일 뿐이었다. 살아있다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다.
심연의 어둠과 고요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쉼 없는 바다에서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 바빴으니까. 생각할 시간도, 느낄 시간도 없었다. 그저 다음 꼬리질을 준비하고, 다음 먹이를 찾고, 다음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것만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끔찍한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쉼 없이 헤엄쳐왔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매일 아침 그 차가운 동굴을 나서야 했는지, 왜 먹이를 찾아야 했는지, 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해야 했는지... 그 모든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남들처럼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색깔을 보면 기분이 좋았는지, 어떤 소리를 들으면 행복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의 취향, 나의 꿈, 나의 욕망... 그 모든 것이 희미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마치 나의 영혼을 잃어버린 듯한 깊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나는 껍데기만 남은 고래 같았다. 속이 텅 비어버린 거대한 몸뚱이. 쉼 없는 바다에서 나는 그저 움직이는 기계였을 뿐, 그 안에 '나'라는 존재는 없었던 것 같았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의지... 그 모든 것이 쉼 없는 바다의 물살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예전에는 분명 나만의 '노래'가 있었던 것 같았다. 다른 고래들의 노래와는 다른, 나만의 고유한 멜로디. 기쁠 때 부르고, 슬플 때 위로받고,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던 그런 노래. 그 노래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나의 존재를 알리는 울림이었다. 나의 기분,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 하지만 그 노래가 어떤 멜로디였는지, 어떤 의미였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해 내려 애써도,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나의 기억 속에서 그 부분을 도려내 버린 것 같았다. '잃어버린 노래'. 그것은 잃어버린 나 자신 자체였다. 노래를 잃어버린 고래는 더 이상 고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거대한 몸뚱이에 불과한.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숨은 쉬지만 숨 쉬는 의미를 모르는. 존재하지만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둠 속에서 나는 끝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쉼 없이 헤엄쳤는가? 그 끝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멈추면 도태된다는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 하지만 어떤 질문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쉼 없이 헤엄치는 고래였을 뿐. 그 외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쉼 없는 바다에서 그토록 필사적으로 나아갔던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멈추는 순간, 내가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 알게 될까 봐. 나의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게 될까 봐. 그래서 멈추지 않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도망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으로부터.
심연의 고요함은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쉼 없는 바다의 소음과 압박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곳. 그 어떤 기대도, 요구도 없는 곳. 그 어떤 비교도, 경쟁도 없는 곳. 그저 어둠과 나만이 존재하는 곳.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잠시 평화를 느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동시에 나를 더욱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나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왜 아직 숨을 쉬고 있는가? 이대로 영원히 어둠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이대로 어둠 속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유혹이 강하게 밀려왔다. 쉼 없는 바다의 고단함도, 다른 고래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무력감도, 홀로 남겨진 외로움도...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의미 없는 경주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심연의 차가움이 나를 감싸 안으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괜찮아. 여기서 쉬어.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해질 수 있어.' 그 속삭임은 너무나 달콤해서, 나의 지친 마음을 흔들었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던 순간, 아주 희미하게, 마치 꿈결처럼 아득한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것은 분명 노래였다. 너무나 작고 희미해서, 심연의 고요함 속에서 겨우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것 같은, 혹은 내가 직접 불렀던 것 같은 익숙함. 잊고 있었던, 하지만 나의 일부였던 멜로디. 완벽한 멜로디는 아니었다. 조각조각 끊어지고, 흐릿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 그 안에 담긴 '나'의 흔적이 느껴졌다. 슬픔 같기도 하고, 그리움 같기도 하고, 아주 작은 기쁨 같기도 한 복잡한 감정. 그것은 세상의 소음과는 다른, 나만의 소리였다. 다른 고래들의 힘찬 노래와는 다른, 나만의 작고 연약한 멜로디. 하지만 그 어떤 소리보다도 분명하게 나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 여기 있어.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희미한 소리는 나의 심장을 아주 약하게 두드렸다. 죽어있던 심장에 아주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멈춰버렸던 몸속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었다. 그 떨림은 점점 커지더니,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차가운 심연의 물속에서, 나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따라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본능적인 충동이 일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심연에 머무는 것이 훨씬 편하고 안전할지도 모른다. 다시 쉼 없는 바다로 돌아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또다시 고단하고 외로운 일상이 반복될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노래가 이끄는 곳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 나의 '잃어버린 노래'를 되찾을 수 있는 희망.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마음속에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꺼져가던 생명력에 아주 작은 불꽃이 다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 불꽃은 너무나 작았지만, 심연의 어둠 속에서는 유일한 빛처럼 느껴졌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처럼.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심연의 깊은 수압이 온몸을 짓눌렀다. 마치 거대한 손이 나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위로 향하는 물살은 너무나 차갑고 무거웠다. 몸은 나의 의지에 반항하는 듯했다. '그냥 여기 있어. 편하잖아.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심연의 고요함은 나를 붙잡으려 했다. 영원한 안식의 유혹. 하지만 희미한 노랫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그 소리는 너무나 작았지만, 심연의 고요함 속에서는 분명하게 들렸다. 마치 나만을 위해 연주되는 멜로디처럼. 다른 어떤 소리에도 방해받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 그 소리는 나에게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너는 아직 여기에 있어. 네 노래를 찾아야 해.'
나는 아주 느리고 힘겹게 꼬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의 움직임이 천 번의 노력처럼 느껴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굳어버렸던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것은 고문과 같았다. 심연의 압력이 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위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쉼 없는 바다를 향해. 하지만 쉼 없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잃어버린 노래'의 소리를 따라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나를 되찾으라고. 나의 노래를 다시 부르라고. 나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라고.
한 번, 두 번... 아주 느린 속도로 꼬리를 움직였다. 몸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위로 향했다. 심연의 어둠은 여전히 짙었고, 고요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포기하려던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던 순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그 희미한 노랫소리였다. 그것은 세상의 소음과는 다른, 나만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부를 뿐이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네 노래를 찾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나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심연을 벗어나 쉼 없는 바다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아주 느리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몸은 지쳐 있었으며, 심연의 어둠은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수압은 조금씩 약해졌지만, 여전히 몸은 무거웠다. 쉼 없는 바다의 소음이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지만, '잃어버린 노래'를 찾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다. 나는 움직였다. 희미한 노랫소리를 따라. 나를 찾아. 심연의 끝에서, 나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다시 세상으로 향했다. 그것은 쉼 없는 바다에서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래를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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