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갑고 축축한 바위 동굴 깊숙한 곳에서 눈을 떴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치 태엽 감긴 기계처럼 하루를 시작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몸은 어제보다 더 무거웠고, 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깊은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피로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듯한 통증만이 느껴졌다. 지느러미 끝부터 꼬리까지, 모든 신경이 욱신거렸다. 마치 몸 안의 모든 뼈와 살이 따로 노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어제의 고단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차가운 물살이 동굴 안까지 스며들어 내 몸을 감쌌다. 그 물살은 마치 채찍처럼 느껴졌다. '일어나. 움직여. 시간이 없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동굴 안은 언제나 똑같은 냄새와 똑같은 온도였다. 눅눅하고, 비릿하며, 생기 없는. 마치 거대한 무덤 같기도 했다. 이곳은 안식처라기보다는 그저 다음 고통을 준비하는 대기실 같았다. 나는 매일 아침 이 익숙한 불쾌함 속에서, 아무런 기대나 설렘 없이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보다는, 또다시 반복될 고단함에 대한 막막함만이 가슴을 짓눌렀다. 숨을 쉬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저 이대로 눈을 감고 다시 잠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물살 소리, 다른 고래들의 움직임 소리가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동굴 어귀를 벗어나자마자 마주한 것은 끝없이 펼쳐진 '쉼 없는 바다'였다. 이름처럼 이 바다는 단 한순간도 쉬는 법이 없었다. 잔잔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거대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고, 그 파도 속에서 수많은 고래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맹렬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는 거대한 경주장이자, 생존을 위한 전쟁터 같았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잠시라도 멈추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멈추는 순간 뒤따라오는 물살에 휩쓸리거나, 다른 고래들에게 밀려나거나, 혹은 그저 존재 자체가 잊혀버릴 것만 같았다. 숨 가쁜 일상의 반복이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바다로 나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해가 뜨는지 지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 시간은 그저 꼬리질의 횟수로만 측정되는 것 같았다. 하루는 수천 번의 꼬리질로 시작해서 수만 번의 꼬리질로 끝나는 무의미한 연속이었다.
나의 하루는 정해진 패턴대로, 마치 프로그램된 것처럼 흘러갔다. 첫 번째 임무는 먹이를 찾는 것이었다. 넓고 깊은 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작은 물고기 떼나 플랑크톤 무리를 찾아야 했다. 먹이를 찾는 과정은 기계적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물고기 떼를 향해 돌진하고, 거대한 입을 벌리고, 차가운 바닷물과 함께 삼키는. 맛도,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배를 채우는 것은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연료를 채우는 것과 같았다. 배가 고프면 움직일 수 없으니까. 하지만 배가 불러도 기쁘지 않았다. 그저 또다시 헤엄쳐야 한다는 사실만이 남을 뿐이었다. 때로는 먹이를 찾는 것조차 귀찮아서, 그저 굶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몸은 움직였다. 살아야 한다는, 움직여야 한다는 원초적인 명령에 복종할 뿐이었다. 그 명령은 너무나 깊숙이 새겨져 있어서, 나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먹이를 충분히 섭취하고 나면, 다음은 이동이었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수많은 고래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물길을 따라 그저 흘러가는 것 같았다. 나의 의지대로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할 여유는 없었다. 그저 그 거대한 흐름에 내 몸을 맡긴 채 꼬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꼬리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고, 물살의 저항이 느껴졌다. 수천, 수만 번의 꼬리질. 그것이 나의 하루였다. 생각할 겨를도, 느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두가 이 길을 가고 있었고, 나도 그 무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 길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위험하다', '뒤처진다'는 경고만이 막연하게 떠돌았다. 그 막연한 경고는 현실적인 위험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눈앞에는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다른 고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유려한 움직임, 거침없는 속도, 그리고 목표를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듯한 확신에 찬 모습. 어떤 고래들은 무리 지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거대한 물살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와 그들을 비교하며 깊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왜 나는 저들처럼 힘차게 나아갈 수 없을까. 왜 이렇게 매 순간이 버겁고 지루하게 느껴질까. 왜 저들처럼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홀로 겉도는 것 같을까. 그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고, 함께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소리는 활기찼고, 그들의 움직임은 생명력이 넘쳤다.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않았고, 그들의 소리는 나에게 의미 없이 부서졌다. 나는 그저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그림자 같았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켰다. 다른 고래들은 무리 지어 이동하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듯 보였지만, 나는 그 무리 속에서도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고, 그들의 웃음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나는 그저 거대한 바다의 일부가 아닌, 그 바다를 떠도는 작은 점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존재가 너무나 미미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마치 이 넓은 바다에서 나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멈추든, 계속 가든, 이 바다는 아무런 변화 없이 흘러갈 것이라는 냉혹한 진실이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저 이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부품일 뿐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답을 찾을 시간도, 찾을 힘도 없었다. 그저 꼬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루가 몇 시간인지, 얼마나 이동했는지, 얼마나 먹이를 먹었는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꼬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지느러미는 욱신거렸고, 아가미는 숨쉬기 버거웠다. 피부는 차가운 물살과의 마찰로 따끔거리는 듯했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정신은 이미 오래전에 지쳐버렸고, 이제는 몸마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리고 있었다. 꼬리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춰서는 안 되었다.
이 바다에서는 멈추는 것이 곧 도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잠시라도 멈추면 뒤처지고, 결국 살아남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나의 심장을 짓눌렀다. 뒤따라오는 고래들의 거친 물살 소리가 등 뒤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았고,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맹렬해지는 것 같았다. 멈추면 그들의 물살에 휩쓸려 방향을 잃거나, 상처 입거나, 혹은 그저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릴 것만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었다. '멈추지 마. 멈추면 끝이야. 뒤처지면 아무것도 아니게 돼.' 세상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강력해서, 나의 작은 의지를 짓밟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처럼 느껴졌다. 두려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바다에서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더라도, 존재의 소멸.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사라짐.
하지만 그 두려움조차 지금 느끼는 고단함과 무력감을 이기지 못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너무나도 강렬했다. 더 이상은, 정말 더 이상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쇳덩이가 된 것처럼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지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순간이었다. 꼬리를 움직이려는 시도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것처럼, 지느러미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멈춰!'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이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천천히 꼬리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버티려 했지만, 몸은 이미 나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거대한 몸이 기울어지며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쉼 없는 바다의 소음이 점점 멀어지고, 고요함이 나를 감쌌다. 위에서 쏟아지던 햇빛은 순식간에 희미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짙은 어둠만이 나를 감쌌다. 빛이 닿지 않는 깊은 심연을 향해, 나는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멈추면 도태된다는 세상의 속삭임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가라앉을 뿐이었다. 중력에 이끌리듯, 모든 것을 놓아버리듯.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이 끝없는 고단함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비교당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이 무의미한 경주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쉼 없는 바다의 표면에서 멀어져, 알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 어떤 생각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의 상태로. 오직 차가운 물살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세상의 모든 소음과 압박에서 벗어나, 나는 그렇게 깊은 곳으로, 나만의 고요함 속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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