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날들은 대개 삶이 잘 굴러갈 때가 아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도, 미래가 또렷하게 보일 때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 말도 쉽게 믿어지지 않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 순간에 우리는 기적을 떠올린다.

처음에는 이렇게 묻게 된다.
기적이란 무엇일까.
정말 그런 게 존재하긴 할까.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면 이 질문은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나는 아직 살아도 되는 걸까.

우리는 오래도록 기적을 결과로 배워왔다.
상황이 바뀌는 일, 병이 낫는 일,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지는 사건.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하루는 늘 기적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반복되는 날들은 그저 견뎌야 할 시간으로만 남는다.

하지만 기적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번쩍이지 않고, 도착을 알리는 소리도 없다.
대신 사람의 안쪽에서 일어난다.

어제와 똑같이 아픈데도 오늘을 넘기는 일.
내일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오늘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 선택.
설명할 힘도, 납득할 이유도 없는데 이상하게 숨이 한 번 더 이어진 순간.
그런 것들이 기적의 가장 현실적인 얼굴이다.

기적은 삶을 바꿔주지 않는다.
삶을 사랑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삶을 포기하게 하지 않는다.
끝을 선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에서 ‘아직은’ 이라는 말 하나로 하루를 유예해 주는 것.
그게 기적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적은 희망의 정점에서 오지 않는다.
기도가 가장 간절할 때도 아니고, 노력이 충분히 쌓였을 때도 아니다.
기적은 오히려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때, 바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 지점에서 찾아온다.
포기의 문턱에서 끝내 한 발을 넘기지 못한 순간에.

우리는 종종 기적이 지나간 뒤에야 그것을 알아본다.
그날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넘겨버린 밤.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 선택이 나중에서야 나를 살려 두었던 날.
그제야 깨닫는다.
아, 그게 기적이었구나.

기적은 삶을 납득시켜주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왜 이렇게까지 버거운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기적이란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안은 채 내일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것.
오늘의 나를 폐기하지 않는 일.

기적은 크지 않아도 된다.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기적은 알아봐 달라고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제 몫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여러 번 기적을 겪은 사람이다.
그걸 몰랐다고 해서 덜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다.

기적은 끝내 사라지지 않은 사람에게 이미 와 있었던 것이니까.
Posted in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