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가끔 내가 왜 노래를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버티기 위해서인지.
그 질문은 늘 명확한 답을 데려오지 않는다.
다만 같은 방향을 가리킬 뿐이다.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울고 난 뒤에 들으면 좋을까, 아니면 울기 직전에 듣는 게 좋을까.
생각은 그렇게 흘러가다 어느 순간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사실 지쳐서 쓰는 건 아니다.
완전히 소진된 상태라면 아무것도 붙잡을 힘조차 없었을 테니까.
오히려 나는 다시 한 번 처음의 이유에 손을 대고 싶을 때 노래를 쓴다.
왜 시작했는지, 왜 아직 놓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아직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하루를 살아내고 나면 말로 꺼내기엔 너무 가볍고, 그대로 두기엔 너무 무거운 것들이 남는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 누구에게도 건네지 못한 안부, 하루의 끝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 같은 것들.
그것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속 어딘가에 머물다가 가끔씩 숨을 막히게 한다.
예전에는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고 했다.
왜 힘든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하지만 설명하려 할수록, 마음은 자꾸 무거워지고, 말은 먼저 닳아버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적어도 나만은 이 감정들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작은 약속을 하게 됐다.
그 약속을 가장 덜 상처 입히는 방식이 나에게는 음악이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언어, 말로는 닿지 않는 감정을 그냥 소리로 둘 수 있는 방법.
하루를 견디는 데 음악이 곁에 있어야만 했던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충 넘길 수 있는 이유로는 노래를 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이나 얹힌 음악으로 앞으로를 채우고 싶지도 않았다.
설명하면 줄어들고, 이유를 붙이면 닳아버리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과 슬픔의 중간, 괜찮다는 말과 괜찮지 않다는 고백 사이에 가만히 머무는 감정들.
그 애매한 자리야말로 내가 가장 오래 서 있는 곳이었다.
문장으로 옮기면 마음이 너무 각이 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혼자 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졌다.
그래서 노래는 말과 침묵 사이에 놓인 세 번째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계속 붙잡게 되는 것.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말은 늘 한 박자 늦고, 설명은 자주 어긋난다.
침묵은 또 얼마나 쉽게 오해가 되는지.
그래서 더더욱 말로는 다 하지 못한 것들이 노래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대단한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그저 옆에 남아 있는 방식으로.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 문장들은 누군가를 위해 쓴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스스로에게라도 말해주고 싶었던 문장들.
그 문장들을 적어 두고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뭔가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고, 이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두었다.
적어둔 말들이 나 대신 잠시 버텨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부터 자꾸 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말이 아니라, 설명도 아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멜로디 같은 것들.
잡아두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아서 조금만 손을 뻗어봤다.
그게 시작이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음악이라고 부르기엔 다시 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냥 말로는 더 이상 다룰 수 없는 감정들이 어디엔가 있어야 했고, 그 자리가 우연히 음악이었을 뿐이다.
처음엔 망설이게 됐다.
이걸 왜 다시 붙잡고 있는지, 괜히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럴 때마다 굳이 설명하지 않으려고 했다.
설명하는 순간 이 감정이 갑자기 작아질 것 같아서.
나는 이미 설명하다가 마음을 잃어본 적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음악 앞에서는 아무 말도 붙이지 않으려고 했다.
목표도, 이유도, 결과도 없이.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만두는 날이 더 많았다.
그게 나에게는 다시 시작하는 방식에 가장 가까웠다.
돌아보면 나는 음악을 다시 선택했다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은 이미 많고, 침묵은 너무 길어졌고, 설명은 계속 엇나갔다.
그 사이에서 소리만이 아직 건드리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시작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이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가까웠고, 나 자신에게만 남겨두는 이유였다.
이 글의 처음에 적었던 질문들로 자꾸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이 노래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울고 난 뒤일까, 아니면 울기 직전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질문들을 품은 채 다시 음악 쪽으로 발을 옮기게 된 이유만큼은 부정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노래를 쓰고 있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말로 남기지 못한 마음들이 아직 여기 있다고 나 자신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 시작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완성이라는 말이 끝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처음의 이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직 그 손을 아직 놓지 않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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