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직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데, 거리는 반짝인다.
가게 유리창에 불이 켜지고, 평소엔 귀에 걸리지 않던 노래가 괜히 오래 남는다.
누군가는 이 계절을 기다렸다는 듯 발걸음이 가볍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인다.
같은 날을 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서 있다.

나는 크리스마스를 대단한 날로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기대를 크게 품을수록 마음이 쉽게 지친다는 걸 이미 여러 번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완전히 무심해지지는 못한다.
퇴근길에 켜진 트리를 보면, 괜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잠깐 멈춰 서서 불빛을 보고, 별 의미 없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가 이내 지운다.
남길 만큼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마음이 조금 걸리는 장면들.

이 계절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유난히 갈라진다.
누군가는 약속으로 달력을 채우고, 누군가는 그 빈칸을 더 또렷하게 마주한다.
연락할 이유를 찾는 사람과, 연락하지 않을 이유를 고르는 사람이 같은 거리를 걷는다.
웃음과 침묵이 나란히 놓인 풍경.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크리스마스를 바라본다.
중심이 아니라, 늘 가장자리에서.

약속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낸 해가 있다.
그날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었다.
늦게 일어나 커튼을 열었고, 대충 끼니를 때웠다.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즐거운 이야기만 흘러나와서 소리를 줄였다.
창밖으로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외로운지 아닌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는 종종 ‘행복해야 하는 날’로 불린다.
그 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괜찮지 않은 마음을 숨기게 만들고, 웃는 얼굴을 준비하게 한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쁨과 피로가 함께 있을 수 있고, 감사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는 그 복잡함을 지워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날은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보냈는지, 즐거웠는지, 의미 있었는지를 묻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으면 한다.
그냥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인정해 주는 하루.
누군가에게는 그 인정 하나가 가장 필요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린 적도 있다.
모든 것이 하얗게 덮이면, 마음도 잠시 정리될 것 같아서.
하지만 눈이 오지 않은 크리스마스도 많았다.
그래도 괜찮다.
크리스마스는 꼭 완성된 장면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로 남아도, 그 나름의 자리를 가진다.

나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의 공기를 좋아한다.
트리는 아직 치워지지 않았고, 거리는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간다.
들뜬 마음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숨 쉴 공간이 남는다.
그제야 알게 된다.
이 날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큰 기쁨이 아니라, 잠깐 멈출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는 걸.
스스로를 조금 덜 몰아붙여도 괜찮았던 하루.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아픈 날일 수 있다.
떠난 사람을 더 자주 떠올리게 하고, 하지 않은 연락이 마음에 남는 시간.
그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아도 된다.
크리스마스는 모두를 웃게 해야 할 의무가 없다.
각자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놓여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밤이 깊어지면 불빛은 하나둘 꺼진다.
도시는 다시 평소처럼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남는 것이 있다.
우리가 아직 따뜻함을 기대해도 된다는 생각, 오늘이 조금 부족했더라도 내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
나는 그 잔여물을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기억한다.
잘해야 하는 날이 아니라, 버텼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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