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안 좋다, 틀렸다, 책임감이 없다.

대게 사람들은 결과를 본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선택. 하나의 끝.
그리고 그 끝을 향해 도덕이라는 이름의 선을 긋는다.
선을 넘었느냐, 넘지 말았어야 하느냐를 묻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선 앞에 놓여 있던 시간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 몇 번이나 ‘오늘만 지나가자’라고 스스로를 달래야 했는지, 말할 수 없는 밤이 몇 겹이나 쌓였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자살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의 대부분은 사실 죽음 그 자체보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가까이 두기 어렵고, 가까이 두기 어려운 것은 규범과 판단으로 밀어내게 되기 때문에.

‘그건 잘못된 선택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그 고통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이 된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마음은 대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깝다.
살고 싶지 않다기보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고백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고백을 끝으로만 읽는다.
마치 문장이 거기서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이미 벼랑에 선 사람에게 ‘왜 거기까지 갔느냐’고 묻는 말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리를 재는 말이다.
그 말 속에는 함께 서보려는 의지가 없다.

그래서 자살을 두고 용기냐, 비겁함이냐를 묻는 질문은 언제나 조금 어긋나 있다.
그 질문은 사람이 아니라 개념을 상대할 때나 유효하다.

사람의 삶은 그렇게 간단히 분류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내는 일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용기내어 버티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 글은 자살을 옹호하려는 글도, 정죄하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묻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왜 결말에는 그렇게 말이 많으면서 그 앞의 시간에는 이토록 말을 잃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통이 언제든 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답을 남기지 않고 한 가지 질문만 하고 싶다.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이 버텨온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상상해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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