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그 말이 누군가의 등을 다독일지, 아니면 이미 멍든 자리를 다시 누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위로는 흔히 부드러운 말로 여겨진다.
하지만 ‘죽고 싶다’, ‘너무 힘들다’라는 고백 앞에서는 그 단어가 무거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잃는다.
괜찮다는 말도, 힘내라는 말도 모두 너무 무겁고 얕게 느껴진다.
그 밤의 길이를 살아본 적 없는 사람이 그 고통을 단정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위로가 어려운 건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말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다치게 하는지, 선의가 얼마나 자주 오해로 변하는지,
그리고 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그래서 위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무언가를 고쳐주려는 손을 거두고,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려는 입을 닫고,
그저 ‘그만큼 힘들었구나’라고 고개를 낮추는 일.
해답을 들고 오지 않고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 선택.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다.
위로는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말도 어떤 날에는 버팀목이 되고, 어떤 날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된다.
침묵은 누군가에게는 곁에 있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려짐이 된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진심을 다해도 그 말이 닿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내민다.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도망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어쩌면 위로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말은 아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말을 고르는라 멈춰 선 건 무관심이 아니라 상처를 건드릴까 봐 조심했던 증거라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위로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아니다.
잠시 그대로 앉아 있어도 괜찮다고 허락해주는 마음이다.
그 허락이 쌓여 다시 숨을 쉬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위로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상처를 함부로 다루지 않겠다고 이미 선택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말보다 태도를 남기고, 설명보다 곁을 선택한 사람들.
위로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다만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면 된다.
그 태도 하나가 누군가의 가장 긴 밤을 조금은 덜 외롭게 건너게 하니까.
어렵다고 느끼는 그 마음 속에 이미 위로의 본질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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