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놓인 실타래 하나,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어.
내 삶의 축소판이자,
내 마음의 가장 복잡한 지도였지.
수많은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고,
지나온 날들의 모든 감정들이
실처럼 얽히고 설켜 있었어.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꿈들은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빛을 잃었고,
처음 느꼈던 사랑의 설렘은
이별의 아픔에 찢겨 너덜거렸지.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깊은 배신감은
단단한 매듭이 되어 풀리지 않았고,
가슴 깊이 박힌 날카로운 말들은
실의 올을 끊어내며 상처를 남겼어.
도망치고 싶었던 수치스러운 순간들,
그리고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어둠 속에서 나를 옥죄는 트라우마의 그림자들까지.
과거의 조각들, 아픈 기억들,
현재의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모두 뒤엉켜 숨 막힐 듯 단단하게,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암석처럼 뭉쳐있었지.
색깔은 또 얼마나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지.
맑았던 하늘색은 탁한 회색과 검은색에 물들어
본래의 빛을 잃었고,
따뜻했던 주황색은 차가운 남색과 보라색에 잠식되어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어.
희망을 상징했던 밝은 노란색은
절망의 검은색과 불안의 초록색에 가려져
희미한 잔상처럼 남아있을 뿐이었지.
수많은 색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어느 하나 온전한 빛깔을 내지 못하고
모두 탁하고 어두운 그림자 같았어.
만져보면 거칠고 뻣뻣해서
손끝이 닿을 때마다 아릿한 통증이 올라와.
마치 내 안의 가장 깊은 상처를
직접 만지는 듯한 생생한 아픔.
이게 바로 나라고.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진실이라고,
실타래는 말없이, 하지만 분명하고 강렬하게 소리치고 있었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거대하고 복잡한 엉킴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무력해지는 기분이었어.
막막함에 한숨만 수십 번 매쉬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가장자리의 실 한 가닥을 조심스럽게 잡아.
너무 세게 당기면 끊어져버릴까 봐,
아니면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영원히 풀 수 없는 미궁에 빠질까 봐
두려움과 불안함에 손이 자꾸만 떨려와.
심장은 빠르게 뛰어대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그래도 용기를 내어
한 올 한 올, 엉킨 매듭을 찾아
손톱 끝으로 살살, 아주 살살,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을 다루듯,
아니, 그보다 더 조심스럽게 풀어내.
매듭 하나를 풀 때마다
과거의 아픈 장면들이 생생하게,
마치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가.
잊고 싶었던 얼굴들,
귓가에 맴도는 가슴 시린 말들,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순간들…
실이 풀리는 게 아니라
묻어두었던 아픈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고,
손은 자꾸만 멈칫거려.
때로는 너무 아파서
그냥 이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
이 고통스러운 작업을 멈추고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그럴 때마다 나에게 속삭여.
“괜찮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아팠지? 힘들었지? 그래도 여기까지 잘 버텨왔어. 정말 대단해.”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최선을 다했어.”
“이 실타래를 풀면, 더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약속해.”
“너는 충분히 강하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네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나 자신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진심 어린 다독임만이
이 고독하고 힘든 과정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자,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야.
때로는 목소리가 떨리고,
때로는 눈물에 잠겨 흐느끼면서도
나는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
하지만 때로는 너무 답답해.
아무리 풀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매듭을.
하나를 풀었다 싶으면 다른 곳이 더 단단하게 꼬여버리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지치고 좌절하게 돼.
이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싶어.
이 지긋지긋한 엉킴을,
이 고통스러운 실타래를
확 끊어내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이 강하게,
파도처럼 나를 덮쳐와.
이 아픔과 혼란에서 벗어나
그저 평온해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나를 흔들어.
손에 힘이 빠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이 속삭여.
그래도 다시 손을 움직여.
포기하지 않는 나를 믿으며.
느리지만 꾸준히, 멈추지 않고 계속 풀어내.
아주 작은 매듭 하나가 풀릴 때마다
마음속에 작은 빛이 스며드는 것 같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차가운 동굴 속에서 따뜻한 햇살을 느낀 것처럼.
엉켰던 실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거칠고 뻣뻣했던 감촉이 조금씩 부드러워져.
탁했던 색깔들도
본래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을 되찾아가는 듯해.
빨강은 더 뜨겁게, 파랑은 더 깊게, 노랑은 더 환하게.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처럼,
치유는 그렇게 천천히,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에게 다가와.
이제 엉킴 없이 길게 늘어진 실들.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부드럽고 유연한 실들.
수많은 색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있어.
이게 바로 나였구나.
수많은 아픔과 상처, 혼란을 견뎌내고
결국 나를 풀어내고 만 나.
길게 이어진 실을 손에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상해 봐.
이 실들은 더 이상 나를 묶는 족쇄가 아니야.
나를 표현하고, 나를 만들어갈 재료가 된 거지.
이 실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과거의 아픔으로 묶여있던 내가 아니라
이제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나.
따뜻한 미래를 엮어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한 땀 한 땀 정성껏 수놓아 볼까?
아니면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꿈의 성을 쌓아볼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를
이 실로 써 내려가 볼까?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나만의 옷을 지어 입을까?
아니면 길을 잃은 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목도리를 떠줄까?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어.
풀어낸 실타래처럼,
내 삶도 그렇게 다시 시작될 거야.
아픔은 치유되고, 상처는 아물고,
그 자리에는 단단함과 아름다움이 남을 거야.
나는 이제 이 실로
나만의 찬란하고 눈부신 미래를
한 올 한 올 정성껏 만들어갈 거야.
더 이상 엉키지 않고,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오직 나만의 빛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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