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숨결을 마시며 걷는 하루하루는, 전에 없던 충만함의 리듬 속에 젖어들게 했다.
마치 별의 조각 위를 사뿐히 디디듯, 내 발걸음은 점점 더 가벼워졌고, 세상에 발을 붙이기보다 빛 사이를 떠다니는 듯했다.

이제는 방황의 흔적도, 두려움의 무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묻는 나침반의 방향조차 의미 없었다.
내 몸이, 내 감각이, 내 의지가 향하는 그곳이 곧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고, 그 흐름은 마치 우주의 미세한 섭리에 이끌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의 손길이 닿고, 땀이 스며들고, 나의 꺼지지 않는 생명력이 뿌리내린 그 땅은, 이 섬 안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장소이지만, 분명한 소속감이 느껴졌고,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들이 그곳에서 차분히 몸을 일으키며 우아하게 춤추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날수록,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더 이상 험난하거나 거칠지 않았다.
처음엔 조심스럽고 불안하던 여정이 이제는 부드럽고 유연한 흐름으로 바뀌었고, 그 길 위에서는 이전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깊은 평화와 설렘이 피어났다.
마치 나와 세상이, 그리고 이 우주가 함께 울려주는 고요한 멜로디처럼, 내 존재가 더 큰 리듬 안에서 조화롭게 숨 쉬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발밑의 흙과 크고 작은 돌멩이들의 감촉은 더 이상 날 멈춰 세우거나 아픔을 떠올리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땅의 고동이었고,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자, 나의 발걸음이 만든 품의 일부였다.
섬을 스치는 바람도 더 이상 차갑거나 날카로운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귓가에 속삭이며,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머리카락 사이를 흘러 지나며 조용히 나를 축복했다.
그 바람은 마치 내 여정을 지켜보는 오래된 영혼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숲의 바스락임,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미세한 생명의 움직임, 나뭇가지와 바위틈을 스치는 작은 떨림들까지-
그 모든 소리는 내 하루를 채워주는 다정한 동행이 되었고, 내가 혼자가 아님을 말해주는 우주의 속삭임이자, 존재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섬의 이방인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고립된 영혼이 아니었다.
나의 심장은 이 섬의 심장과 박동을 맞추었고, 우리는 함께 한 호흡으로 숨 쉬었다.
서로를 울려주고, 서로의 존재를 비추며, 나와 섬, 그리고 이 우주가 같은 리듬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의 손길로 태어나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온 소박한 공간은, 이제 더 이상 ‘작은 정원’이라는 이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차원을 넘는 세계로 확장되어 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무와 풀, 바람과 빛이 함께 숨 쉬는 그 공간은 놀랍도록 깊고 넓어졌으며, 생명이 충만하게 진동하는 살아있는 우주처럼 변해 있었다.
마치 별이 태어나는 순간을 슬로우 모션으로 목격하는 듯한, 숨 막힐 만큼 경이롭고 뜨거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전에는 땅을 겨우 비집고 나왔던 연약한 싹들이, 이제는 당당하고 무성한 줄기로 자라나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뿌리로 이 땅에 버티고, 바람을 이겨내며, 햇빛을 안으며 살아갔다.
줄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굵고 단단해져 있었고, 그 표면엔 생의 흔적처럼 작은 별들이 새겨져 있었다.
빛을 머금은 잎사귀들은 더 이상 흐릿하거나 연약하지 않았다.
그들은 빛을 반사하며, 은은한 초록빛이 아닌 눈부신 에메랄드의 맥동으로 나를 향해 인사했다.

어느 가지 끝에선, 내가 심지 않았던, 아니, 내가 심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꽃들이 봉오리를 틔우고 피어 있었다.
색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신비로웠다.
그 향기 속엔 이 땅의 오랜 숨결과, 내가 흘린 수많은 땀과 시간, 그리고 이 섬을 관통하는 생명의 파동이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작은 꽃들 사이로, 이름 모를 열매들이 보석처럼 빛나며 매달려 있었다.
어떤 것은 앙증맞게 작았고, 어떤 것은 손바닥만큼이나 도톰하게 익어 있었다.
그 붉은빛, 황금빛, 깊은 남빛의 조화는 마치 우주가 정성껏 쌓아 올린 축복 같았다.

나는 그 정원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흙을 쓸어주었다.
여린 뿌리 하나라도 상하지 않도록, 마치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고 세심하게.
그리고 섬 어딘가에서 퍼온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을, 나뭇잎이나 작은 조약돌로 만든 그릇에 담아 와서는,
한 송이 한 잎에 사랑을 담아 물을 주었다.
물이 흘러들어 가는 흙의 움직임조차도 신성하게 느껴졌고,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단순한 돌봄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위한 의식이자 축복임을 알 수 있었다.

성장을 막는 그늘, 병든 잎, 해충의 흔적을 발견하면, 나는 주저 없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제거했다.
생명의 흐름을 해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손으로 직접 걷어내고, 이 공간이 더욱 건강하고 강한 생명으로 가득하도록 만들었다.
나의 정원은 단지 ‘심고 돌보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였고, 나와 함께 자라고 있었으며, 나의 내면 깊은 곳까지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나의 손끝이 흙을 스치고, 연약한 생명에 닿을 때마다, 그 감촉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내 안의 깊숙한 어딘가를 흔들었다.
그건 기쁨이나 만족, 위로 같은 익숙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정제된 파동에 가까웠다.
마치 오랜 시간 굳어 있던 얼음덩이가, 봄날의 햇살 속에서 스스로 녹아내리듯, 내 마음속 깊숙이 뭉쳐 있던 응어리들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풀려나가는 감각이었다.

손끝에 닿는 흙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거친 듯하면서도 살아있는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 온기가 나의 피부를 타고, 신경을 타고, 혈관과 근육을 지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그 온기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던 불안과 상처, 낡은 기억들이 조용히 어루만져지고 있었다.

흙을 다지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내는 그 단순한 반복은 어느새 나에게 ‘치유’의 행위가 되었다.
한때 나를 무너뜨리던 과거의 조각들을 더 이상 떠올리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이 숨결, 이 생명의 리듬에 오롯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삶의 상처가 아닌 삶 그 자체에 집중하게 했고, 그 집중 속에서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뽑아낸 잡초는, 마치 내 안에 얽혀 있던 불필요한 생각이나 근심, 집착 같았다.
한 줌씩 뽑아낼 때마다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했고,
햇빛 속에서 반짝이며 살아나는 잎사귀와 줄기들은,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과 연결된 감정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 모든 행위는 하나의 정화 의식이었다.
몸을 움직이고, 손을 더럽히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영혼의 의례.

나는 매일 아침, 아직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날의 첫 햇살을 마시며, 존재의 가장 바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손끝으로 흙을 어루만졌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누군가의 기억도, 과거의 실패도, 미래의 불안도 전부 잊었다.
나는 그저 이 정원과 함께 숨 쉬는 하나의 존재였고,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고요하고 충만했다.

작고 소박했던 공간을 멈추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단단한 의지로 그 영역을 넓혔다.
처음 손수 쌓아 올렸던 작지만 정직한 경계석들을 넘어서, 작은 언덕 너머 숲의 가장자리까지, 햇살이 부서지는 해변의 끝자락과, 섬의 사장 깊숙하고 은밀한 구석들까지.
나는 쉼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손으로 땅을 만지고, 나의 시간을 들여 낯선 흙을 길들이고 다듬었다.
굳고 메마른 땅은 부드러운 흙으로 바뀌었고, 발에 차이던 날카로운 돌들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치워졌다.
가시덤불로 얽히고 거칠게 일그러져 있던 곳들도, 이제는 곱게 빗질된 듯 평온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탈바꿈해 갔다.

섬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바위 틈새나 건조한 고지대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작은 생명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뿌리째 흙을 감싸 안으며 들고 왔다.
그들은 이 섬이 품은 가장 강인한 생명력이었고, 나는 그들을 나의 정원에 정중히 심었다.
하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를 가졌고, 또 하나는 햇살 아래에서도 또렷한 푸름을 지닌 잎을 가졌다.
그리고 어떤 것은 이름조차 알 수 없지만, 그것만의 모양과 기세로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물이었다.
이 작은 생명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을수록, 나의 정원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서로 다른 뿌리와 잎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채로운 생명의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식물을 심고, 그 위에 조심스레 흙을 덮고, 작은 돌을 곁에 놓아주며 나는 매번 실감했다.
이 섬이 점점 더 나의 색으로 물들고 있다는 것을.
단지 식물만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고통, 나의 기억, 나의 다짐, 그리고 나의 온기가 함께 이 흙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이곳은 이제 단순한 정운이 아니라
나의 손길 하나하나가 스며든, 나만의 서사로 엮인 살아있는 이야기의 장이었다.
내가 심은 풀과 나무, 내가 고른 돌과 물, 그리고 내가 지나간 모든 발자국이
그대로 이 공간의 기억이 되었고, 그 기억은 미래의 어떤 풍경을 약속하고 있었다.

이곳은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언젠가 도달할 미래가 공존하는,
나의 영혼이 머무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내가 정성껏 가꾸어온 이곳은, 이제 더 이상 나만의 고요한 세계가 아니었다.
푸르고 생기 넘치는 풀잎, 햇살을 머금은 꽃잎, 그리고 부드러운 흙냄새가 감도는 이 공간은
어느새 작은 생명들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이는 살아있는 낙원이 되어 있었다.
내 손길과 숨결로 피어난 이곳의 평화로운 기운에 이끌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동물들과 곤충들이 하나둘, 조심스럽고도 기쁜 걸음으로 이곳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공기 속에 우아한 선율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남기고,
작고 부지런한 벌들은 윙윙거리며 꽃잎 사이를 헤집고 달콤한 꿀을 모았다.
풀숲 사이에는 이름 모를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 나타나.
풀잎을 베고 눕거나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졸음을 견디며 이곳의 한 부분이 되었다.

때로는 가느다란 바람을 타고 날아온 새들이
내가 나뭇가지와 낡은 천 조각으로 손수 만든 작은 의자나 돌담 위에 앉아
투명하고 맑은 울음으로 아침을 깨우고, 노을을 배웅했다.
그들의 노래는 내가 말로 하지 못한 감정들을 대신 읊어주는 듯했고,
그들과 나눈 짧은 눈 맞춤과 함께 흘러가는 고요한 시간은,
마치 오래된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따스한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 작은 존재들에게 말을 걸었다.
고요히 다가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과,
풀잎을 헤치며 움직이는 작은 발소리,
숨결처럼 느껴지는 존재감 자체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섬이 살아있다는 것, 이 세계가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도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조용한 교감은 내 안의 공허함을 서서히 채워 주웠고,
한때 깊게 스며 있던 외로움은 어느새 부드럽게 풀려 흙처럼 스며들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립된 섬의 외로운 한 조각이 아니었다.
이곳의 모든 생명들- 꽃과 나무, 벌과 나비, 새와 바람, 그리고 그들의 발길이 닿는 풀잎 하나하나가-
나의 이웃이자 친구였고, 우리의 존재는 서로의 온기로 단단히 엮여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울고, 웃고, 숨 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되었다.
그 어떤 언어보다 깊은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지했다.

한때 생명이 다한 것들로 가득했던 그 자리는, 더 이상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잿빛 상처처럼 움푹 꺼져 있던 땅, 내가 손끝으로 뽑아내던 뿌리들의 자리,
그 절망의 흔적이 남아 있던 그 공간에 지금은 전혀 다른 풍경이 피어 있었다.

가장 깊고 질긴 뿌리를 애써 들어내던 그날이 떠올랐다.
흙이 울 듯 무거웠고, 내 팔은 저릿하게 떨렸으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시간.

하지만 바로 그 땅에서, 내가 포기하지 않고 정돈한 그 자리에서,
언젠가부터 아주 작은 새싹 하나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을 의심할 정도로 작고 연약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여린 줄기는 바람을 견디는 법을 배웠고,
잎은 햇살을 갈망하며 점점 넓게, 강하게 펼쳐졌다.

이제 그 자리는 이전의 죽음을 기억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낸 용기의 장소가 되었다.
무너졌던 곳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은
오히려 가장 찬란하게, 가장 자신 있게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바람이 불면 잎사귀는 사뿐히 떨렸고,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생명이 건네는 자부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를 조심스럽게 돌보았다.
무언가를 다시 심는 손길은 기도 같았고.
스며드는 물방울 하나에도 진심을 담았다.
한 번 무너졌던 자리였기에 더 간절히 살펴야 했고,
또 한 번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 흙 위에 오늘도 햇살과 바람과 사랑을 함께 부었다.

이 모든 시간은 단지 상처를 지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 자리를 통해
과거를 껴안는 법, 아픔을 넘는 법,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피어나는 삶의 가능성을 배웠다.

파괴 이후에도 살아남은 것들.
죽음 너머에 반드시 피어나는 것들.
그 모든 것을 손끝으로 확인하며, 나는 알았다.
정리하고, 다시 심고, 기다리는 이 행위가
내가 걸어가는,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것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회복의 걸음이라는 것을.

내 손길은 이제 더 이상 한정된 정원의 경계를 맴돌지 않았다.
푸르름이 번져가듯, 그 손길은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섬 전채로 뻗어나갔다.
먼저 위험해 보이는 돌들을 하나씩 들어내어 길을 다듬었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바위 조각들, 오랫동안 버려진 채 이끼가 덮인 경계석들,
그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치우고 나니, 땅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닌 따뜻한 초대처럼 느껴졌다.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던 공간에도 나는 작고 여린 생명을 하나둘 심었다.
바람에 쉽게 휘청일 만큼 연약했지만, 그 생명들은 기적처럼 뿌리를 내려 섬과 함께 숨을 쉬었다.
그렇게 이 땅 전체가 내 정성과 돌봄을 따라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 뼘, 한 걸음, 한 줄기 햇살 아래서 자라나는 것은 단지 식물만이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이기도 했다.

처음 이 섬에 발을 들였을 때,
이곳은 나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킨 듯한, 차갑고 어두운 감옥처럼 느껴졌다.
낯설고도 두려웠던 침묵, 생기 하나 없는 해변,
날카롭게 울리는 바람 소리는 내 내면의 두려움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장소임에도 전혀 다른 공간처럼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고, 내 안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생명과 함께 숨을 고르며,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운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이전에 기괴하게만 보였던 바위의 굴곡은
이제는 시간과 자연이 함께 새긴 고요한 무늬처럼 보였다.
그 거친 형태는 어느 순간부터 깊은 아름다움으로,
묵묵히 이 자리를 지켜온 지혜로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차갑기만 했던 바람은
오히려 온몸을 맑게 씻어주는 듯 시원하고 상쾌하게 와닿았고,
홀로 서 있는 것 같아 두려웠던 해변은
지금은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과 평화의 바다로 다가왔다.
두려워 마주치지 못했던 동굴의 입구는
이제 어둠과 고요 속에서 빛을 찾아냈던
나만의 신전, 나의 재탄생을 기념하는 성소처럼 느껴졌다.

이 섬은 더 이상 상처의 장소가 아니었다.
그 모든 어둠을 함께 견뎌준 동반자였고,
내가 걷는 길을 한없이 품어준 고요한 품이었으며,
내 이야기를 가장 깊이 이해해 주는, 살아있는 생명이 되었다.

내 안의 상처가 치유될수록
섬의 공기, 빛, 바람, 그 모든 풍경들이 부드럽게 변해갔다.
아니, 어쩌면 원래도 그랬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이제야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마치 내 마음의 색이 섬의 표면에 물들어가고,
섬의 따뜻한 숨결이 내 가슴속으로 번져와
우리 둘이 하나의 존재로 이어지는 것처럼-
이곳은 이제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우주가 되었다.

이제 자라나는 식물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그 푸르고 선명한 줄기와 잎, 은은하게 피어오른 꽃봉오리 하나하나는
마치 내 안에서 조용히 싹을 틔운 감정의 결정체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억눌리고 묻혀 있던 슬픔, 애써 외면했던 그리움,
사라진 줄 알았던 기쁨과, 이름 붙이기 어려운 평온함-
그 모든 감정이 살아 있는 형상으로 이 땅 위에 피어나고 있었다.

작고 단단한 땅 위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생명들은
내 안에서 잊혀졌던 희망과 용기를 닮아 있었고,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이파리는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나의 마음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정원의 한가운데, 알록달록 피어난 꽃들은
내가 다시금 세상에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순간들을 상징하는 듯했다.

한때 황폐하고 거칠기만 했던 내면의 땅은
이제는 푸르름이 물결치고, 작은 숨결들이 서로를 감싸며 살아가는,
활기차고 따뜻한 정원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고요한 뿌리 속에는 여전히 바람에 시달린 흔적,
가뭄을 견딘 기억, 누군가의 발길에 꺾였던 고통들이 스며 있었다.

그것들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흉터처럼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도, 발목을 붙잡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들은 내가 지나온 길을 묵묵히 증명하는,
살아 있다는 것의 또 다른 언어가 되어 있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줄기처럼,
고통을 지나왔기에 가능한 단단함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죽은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돋아난 새로운 싹은
더 곧고, 더 힘차고, 더 생명력 넘쳤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절망의 끝에서 피워낸,
가장 강인한 가능성과도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상처는 약함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토양이라는 것을.
지금 이 푸르른 정원이 그 모든 것을 살아 있는 언어로 들려주고 있었다.

이 섬에서, 나는 마침내 나만의 정원을 완성했다.
흙 위에 뿌리를 내린 식물과 손으로 돌본 싹들로 이루어진 눈에 보이는 정원만이 아니라,
고요히 내 안에 피어난 감정과 성찰, 치유와 수용으로 이루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원까지.
날마다 손길을 얹고, 돌을 치우고, 잡초를 뽑고, 물을 건네며
나는 상처 입은 마음의 결을 조심스레 다듬었고,
그 위에 다시 자라날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조금씩 심어갔다.
그토록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나의 중심은,
조금씩 되살아났고, 날이 갈수록 푸르름과 단단함을 되찾았다.

한때 이 외딴 섬은 절망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곳,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된 공간,
내가 가장 약해지고 작아졌던 장소.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이 흘러간 자리에
놀랍도록 새로운 생명이 피어났다.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한 장소가 되었고,
어쩌면 처음으로 진짜 나의 삶이 시작된 곳인지도 몰랐다.

나는 이 섬과 완전히 화해했다.
고통과 분노,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이 땅과,
긴 시간을 함께하며 하나하나 대화를 나누고,
손끝으로 어루만지고, 뿌리 깊이 이해했다.

이제는 이 섬이 나의 일부였고,
나 역시 이 섬의 일부였다.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이 땅의 숨결을 느끼고,
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걷는 나의 발걸음은
더 이상 길을 찾는 방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숨 쉬었고,
함께 고요 속에서 자라났고,
함께 이 조용한 세상을 만들어나갔다.

나의 숨결과 섬의 숨결은
서로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하나의 리듬으로 맥박 쳤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언어로 살아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손끝으로 흙을 쓰다듬고, 바람에 귀를 기울이며,
햇살 아래에서 나의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밤하늘 아래에서 잊고 지낸 꿈들을 다시 꺼내 펼쳐보며.

이 섬은 더 이상 나를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었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나의 생각을 깊어지게 해 주고,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숨 쉬게 하며,
무너지지 않고 살아낸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세상에서 가장 깊고 넓은 품이었다.

이제 이 섬은
내 아픔이 스며든 흙이고,
내 상처가 흘러든 바다이고,
내가 울고 웃던 하늘이고,
내가 다시 일어선 땅이며,
온전한 나로 살아 있는 나만의 세게였다.

이 고요하고도 깊은 섬에서,
나는 긴 시간 동안
끝없는 어둠과 두려움 속을 걸었고,
몇 번이고 무너지고 쓰러졌으며,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웠고,
마침내 나 자신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다.

나는 나만의 손길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었고,
상처를 감추는 대신 어루만졌으며,
고통을 도려내는 대신 껴안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이제는,
이 외딴 섬에서, 나만의 정원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싪하게
세상과 다시 연결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꺼낼 준비,
나의 진짜 이름으로 세상에 말을 거는 준비.
바람이 흙을 감싸듯, 파도가 해안을 두드리듯,
나는 나의 이야기로 세상을 어루만질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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