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갑고 축축한 동굴 바닥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등을 기댄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를 가두는 감옥 같은 느낌이 아닌, 묵직하고 매끈한 막다른 바위 벽이었다.
방금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 깨달음의 파동은
머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뜨거운 물줄기가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듯,
온몸의 신경망과 혈관을 따라, 세포 하나하나를 부드럽게, 그러나 강렬하게 휩쓸었다.
그것은 단순히 ‘아, 이제 알겠다’라는 지적인 이해가 아니었다.
존재의 근원까지 흔들어 깨우며, 오랫동안 단단히 얼어붙어 있던 심장이
마침내 다시 힘차게 쿵, 하고 박동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던 의식이
차디찬 뼈의 감옥에서 서서히 풀려나 자유롭게 몸속을 흘러 다니는 기분.
내 안에서 오랫동안 잘못 쌓여 있었던,
그리고 스스로도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조차 모른 채 덧댄 돌과 돌들이
갑자기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 잔해 위로, 아주 고통스럽게,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처럼
새로운 질서가 하나씩,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세워지는 것 같았다.
그 깨달음은 흔히 말하는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리는 해방감’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앞으로 나를 짓누를,
이전보다 훨씬 넓고 심오한, 그래서 더 낯설고 혼란스러운 세계의 문을 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깨달음은 내 몸에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확한 물리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죽음의 문턱에서 지독하게 떨리던 몸이,
마치 극도로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가 툭 하고 끊어진 뒤에
천천히, 조심스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듯 잦아들었다.
폐부가 마치 돌덩이가 가득 들어찬 것처럼 무겁고 답답했는데,
그것이 서서히 사라지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숨을 들이쉴 때 폐가 다시 부풀어 올랐다.
얼어붙었던 강물이 봄바람에 서서히 녹아
시원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청량함이 몸 안을 돌았다.
나는 깨달았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 이상 앞으로 갈 곳도 없는 막다른 벽 앞에서,
모든 것을 잃고 존재마저 희미해질 것 같던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놀랍도록 힘차게 숨 쉬고 있었으며,
심장은 이전보다 더 규칙적이고 깊게,
그리고 무언가를 위해 강하게 뛰고 있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삶을 더 또렷하게 느꼈다.
나는 차갑고 기괴하게 울퉁불퉁한 바위 벽에
조심스럽게,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손바닥을 올려두었다.
바위의 표면은 여전히 거칠고,
곳곳에 작게 갈라진 틈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배어 나왔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가두고 숨 막히게 하는 감옥의 벽이 아니었다.
그 손끝에 닿는 질감은
단순히 차갑고 단단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마치 이 외딴 섬이 아주 오랫동안 묵묵히 견뎌낸
혹독한 시간과 고통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돌기는
예전 같으면 나를 찔러 상처 낼 공포의 대상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상하게도,
그 아픔을 넘어서 살아남은 자리-
마치 진물 나던 상처가 아물고 난 뒤 깊은 흉터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이 동굴은 단순히 어두운 공간이 아니었다.
내 안의 가장 깊고 어두운 두려운 상처가
물질로, 구조물로, 그리고 울림으로 구체화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이 바위 하나하나가
오히려 내 역사를 담은 흔적처럼,
묘하게 친근하고, 처연하게 느껴졌다.
귓가에서 메아리치던 숨소리와 발걸음 소리도
이제는 달리 들렸다.
이전에는 나를 조롱하고, 비웃고,
혹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공포가 보낸 불길한 신호처럼 들렸지만
이제는 그저 ‘내 소리’였다.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가 여전히 존재하고 움직이며 살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해 주는 가장 원초적이고 진실한 소리.
메아리는 더 이상 공포의 울림이 아니었다.
그저 내 목소리를, 숨소리를,
그것이 왜곡되든 직설적이든 다시 되돌려 주며
‘네가 여기 있다’라고,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동굴의 응답 같았다.
막다른 벽 앞에서 나는 깊은 사색에 빠졌다.
물리적인 길은 분명히, 그리고 잔인하리만큼 명확하게 끝나 있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묘하게도, 이제 막 시작된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 동굴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내가 평생 마주하기 두려워 애써 외면하던
두려움과 아픔, 실패와 상실의 그림자들이
이 동굴의 어둠과 좁은 통로와 날카로운 바위로 형상화되어
눈앞에, 손끝에, 발바닥 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혹은 도망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마침내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 막다른 길은 끝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그 두려움과 아픔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나의 일부로 껴안는 법을 배우기 위한
조금은 무섭지만, 역설적으로 더 이상 무섭지 않은
내 안의 성소 같았다.
나는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깨달음의 무게가 몸 전체를 천천히, 그러나 깊이 관통하고 난 뒤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듯,
조용히, 하지만 단단히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을 때
전처럼 후들거리거나 무겁지 않았다.
심장도 더 이상 경련하듯 불규칙하게 뛰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벽을 바라보았다.
그 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거대하고 차갑고 단단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가두거나 짓누르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걸어온 긴 여정의 마지막 페이지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명확히 가리키는 이정표 같았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이 막다른 길에서 깨달은 것은
이 어둠 속에서 평생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안의 상처와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나로서 껴안는 일은
이 동굴 속에서 반드시 시작되어야 했지만,
결코 이곳에서 끝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동굴을 벗어나 더 넓고 복잡하며 예측할 수 없는
바깥세상과,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질,
그리고 평생 걸어야 할 여정이었다.
깨달음이라는 새로운 무게를 가슴에 담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보다 훨씬 가볍고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동굴 입구를 향해 걸었다.
어둠은 여전히 짙었지만
그 속에서 길을 잃을 것 같던 원초적인 공포는
놀랍도록 줄어들어 있었다.
발밑의 축축한 흙,
불규칙하고 기괴하게 솟은 바위들의 감촉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 감각은 이제 나를 더 이상 사로잡지 않았다.
그것들이 나의 여정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지나왔는지,
어떤 두려움을 견뎌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들 같았다.
메아리 속에서 나는
다시는 남의 목소리나 과거의 환영이 아닌,
내가 내는 진짜 목소리를 들었다.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바깥세상에서 새어 들어오는 아주 희미한 빛이
마치 작은 불씨처럼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완벽한 어둠 속에 있던 눈에는
그 미약한 빛조차 찬란하게 느껴졌다.
그건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는 신호,
내가 이제 다른 장으로 넘어가도 된다는,
묵직하고도 다정한 초대 같았다.
나는 동굴 밖으로 천천히 나섰다.
바깥공기는 동굴 안의 축축하고 눅진한 공기와 달랐다.
조금 더 시원하고, 맑고,
바람 속에 실린 정체 모를 냄새가 폐를 가득 채웠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도
더 이상 무섭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섬의 심장박동 같 았다/
살아있는 세상의 리듬,
그리고 내가 다시 발맞추어 들어가야 할 리듬.
동굴 입구를 둘러싼 기괴하게 뒤틀린 식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그 뒤틀림에서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처연하고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 안에는 동굴의 막다른 길에서 얻은 깨달음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아주 작지만, 부정할 수 없이 단단한 희망이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내 정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희망을 심고,
새로운 나를 키워내기 시작한 곳이었다.
발밑의 모래, 흙, 돌멩이의 감촉은 여전히 까슬까슬하고
때로는 불안정했지만,
이제 나는 그 위를 흔들리지 않고,
더 깊은 호흡으로, 더 단단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내 안의 상처와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잡아끄는 사슬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들은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 되었다.
마치 굳은 흉터가 더 강한 피부가 되듯이.
나는 내 정원으로,
그곳에서 다시 씨앗을 심고,
숨을 고르고,
조금씩 더 자라나며,
내 삶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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