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에워싼 것은 더 이상 단순히 빛이 사라져 생긴 그림자나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차가운 숨결이 살갗을 훑고 지나가듯 느껴졌고,
온몸을 묵직하고 끈적한 검은 점액이 감싸는 듯,
숨구멍 하나 허락하지 않은 채 나를 옥죄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무참히 빨아들이는 텅 빈 침묵은
귀 속을 묵직하게 눌러 먹먹함을 넘어 속까지 울리게 했다.
그건 소리를 앗아간 정적이라기보단,
차라리 고막과 청각 신경을 부드럽게 꺾어버리는 압력 같았다.

동굴 입구를 넘고 어둠의 심장부로 더 깊이 들어설수록
바깥세상에서 실낱같이 흘러오던 마지막 빛줄기마저 점점 사그라들더니
결국, 마치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영 사라져 버렸다.

이제 단 하나의 광채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하고 절대적인 암흑만이 동굴 전체를,
그리고 이 작고 불완전한 내 존재를 가차 없이 집어삼켰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앞인지 뒤인지, 위인지 아래인지,
온갖 방향감각이 무참히 사라지고
내 몸은 공중에 둥둥 뜬 채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 아득했다.

사방은 오직 검은 색채로만,
마치 무게를 가진 진득한 물질처럼 눌러오는 어둠으로만 가득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코를 찌르는 것은
곰팡이 밴 습기와 썩은 흙냄새만이 아니었다.
썩은 낙엽을 짓이기 듯한, 혹은 오래 고여 있던 물에서 풍기는 비린내 같은
끈적하고 불결한 악취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숨을 쉴 때마다 정신까지 서서히 오염시키는 것 같았다.

축축함은 공기 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동굴 자체가 거대한 스펀지 같기도,
혹은 축축히 젖은 살아 있는 내장처럼 물기를 머금은 듯했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습기는
투명한 얼음 가루가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서서히 뼛속까지 파고들어 몸을 천천히 얼려갔다.

발밑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발에 닿는 불쾌하고 불안정한 감촉만이
내가 여전히 서 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젖은 흙은 물컹했고,
그 속에는 진득하거나 미끄러운 것들이 숨겨져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푹 꺼지거나,
뜻밖의 돌기에 발목이 덜컥 걸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단함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금방이라도 밑이 꺼져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버릴 것 같은
불안정하고 은근히 배신할 땅이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정말로 깨질 듯 얇은 얼음판 위를 걷듯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발자국이 남기는 작은 소리조차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길게, 기괴하게 늘어나 메아리쳤다.

질척이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미끄러지는 마찰음이
동굴 안을 가득 메워 내 귀를 휘감았다.

숨소리마저 크게 울려
이 축축하고 원시적인 공간의 정적을 거칠게 찢었다.

불안하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는
목 바로 옆에서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쿵쿵, 빠르고 묵직하게 때렸다.

소리는 차갑고 젖은 벽에 부딪혔다가
뒤틀린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건 단순히 음향이 부딪혀 돌아오는 반향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비웃는 듯 낮게 꺾이는 웃음소리 같았고,
어떤 때는 과거에 나를 질책하고 몰아붙이던 목소리 같았다.
또 어떤 때는 앞으로 마주할 미지의 공포를
소름 돋을 만큼 조용히 예고하는 예언처럼 들렸다.

나는 눈을 믿을 수 없었기에
손끝과 손바닥, 팔꿈치, 어깨로
앞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벽은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
곳곳이 날카롭고 거칠었으며,
그 표면은 자연에 깎였다기보다
안에서부터 비틀려 나온 것처럼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뾰족한 돌기들은 살 속까지 파고들 듯 날카로웠고,
앙상하게 드러난 뼈마디 같기도, 부러진 송곳니 같기도 했다.

손끝이 스치는 곳마다
축축하고 미끄러운 이끼가 불쾌하게 미끄러져
갑자기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보이지 않는 구멍에 손가락이 깊이 빠져들면
그 차가운 공허가 심장을 쿡 하고 찔렀다.

동굴은 지독히 길고도 좁았다.
통로는 내 몸이 간신히 비틀려 들어갈 만큼만 열려 있었고,
때로는 등을 깊이 굽히거나,
어깨를 틀어 억지로 끼어 들어가야 했다.

바위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나를 짓눌러 오는 것만 같았다.
폐쇄된 공간의 공포가 목구멍까지 치솟아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버거웠다.

‘혹시 이대로 영원히 이 축축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되는 건 아닐까.’

심장은 공포에 쪼그라들 듯 불규칙하게 꿈틀대며
살 속을 은근히 파고드는 얇은 칼날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묵은 흙과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가 더 진하게 피어올라
코와 목구멍을 타고 깊이 스며들었다.

옷 속까지 파고든 습기는
내 체온을 조금씩, 그러나 끈질기게 앗아갔다.

동굴은 나를 덮치고, 짓누르고,
서서히 질식시켜 가는 거대한 생명체 같았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꺼져 들어가는 듯했고,
벽은 마치 호흡을 죽인 채 기다리다
갑자기 내 쪽으로 좁혀오는 것 같았다.

‘이 어둠의 여정에 끝은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끝없는 막막함이
발목을, 허리를, 가슴을,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조여왔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희미하던 빛조차 완전히 사라진 뒤,
나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찾았다.

손으로 벽을 더듬고,
발로 바닥을 느끼며
귀를 세워 작은 소리 하나,
아주 희미한 빛의 흔적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모든 감각을 세웠다.

‘혹시 이 동굴 어딘가에 내가 지나친 작은 틈새가 있을까.
혹은 바깥세상과 이어진 숨구멍 같은 구멍이…
아니면 내 기억과 연결되는 작은 조각이라도.’

절박하게 애써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동굴은 오직 어둠과, 기괴한 바위와,
그리고 내 안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두려움과 아픔으로 가득했다.

희망의 단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내 안의 두려움과 상처들은
길을 잃고 더 깊이 헤맬수록
점점 더 거대해져 나를 짓눌렀다.

과거의 실패와 상처,
외로움과 자기 비난은
이 어둠 속에서 더 날카롭고 또렷하게 살아났다.

마치 이 동굴 자체가
내 절망을 먹고 자라나는 기괴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더 흘렀을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좁고 어두운 통로가
마침내 완전히 막혀버린 곳에 도착했다.

더 이상 손으로 더듬어도
앞으로 이어지는 길은 없었다.

발끝이 닿은 것은
차갑고 단단한,
그리고 이전 바위보다 훨씬 매끄러운 거대한 벽.

밀어보아도, 두드려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벽 같기도 했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세운 거대한 장벽 같기도 했으며,
혹은 이 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넘을 수 없는 근원적 경계 같기도 했다.

나는 완전히 막힌 그곳에서
더 이상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온몸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고.
차갑고 축축한 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의 축축함이 엉덩이와 허벅지를 파고들어
체온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절망은 거대한 파도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빛은 완전히 사라졌고,
길은 막혔으며,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안에는 오직 극한의 두려움과 아픔,
그리고 이 막다른 길에 영원히 갇혔다는
쓰라린 허무와 좌절만이 남았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숨 쉬는 것조차,
그저 존재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이 어둠 속에서는 눈물이 흐르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내가 정말 살아 있는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습기만이
얼굴과 옷, 그리고 영혼 깊숙이까지 스며들었다.

동굴의 어둠은 마치 비웃으며 속삭였다.
‘결국 여기까지구나.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여기서 끝이야.’

그렇게 얼마나 오래
차가운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을까.

시간마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영원히 이 어둠에 갇힌 기분이었다.

존재 자체를 놓아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이 어둠 속에서 고요히 사라지고 싶은 유혹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고,
몸의 감각마저 서서히 무뎌지는 듯했다.

그때였다.

귓가에 왜곡되어 메아리치던
내 거친 숨소리,
규칙 없이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지는
심장 소리가
희미하지만 분명히,
그리고 집요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 틈새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차가운 바위를 뚫고 자라나는 새싹처럼
내 안에서 가만히 울렸다.

순간 깨달음이 벼락처럼 스쳤다.

‘이 동굴은 단순히 물리적인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축축한 길,
끝내 막혀버린 벽,
그리고 숨 막히는 어둠과 공포.

그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애써 외면해온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풍경이 아닐까.

내가 두려워하던 것들,
과거의 상처와 실패,
스스로를 혐오하며 가둬둔 고통.

그것들에 발이 묶여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이 어둠 속에 가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눈물을 흘리던 얼굴에
서서히, 아주 희미한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이곳은 단순히 막다른 길이 아니었다.
내가 반드시 마주하고 껴안아야 할 벽이었다.

아픔과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된 지금이야말로
나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내 안의 상처를 이해하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 막다른 벽이야말로
내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절망의 깊은 심장부에서
나의 진정한 첫걸음이 움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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