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바깥세상의 거친 소음과 압도적인 기운이 사라지고, 동굴 입구 안으로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찰나,
깊고 차가운 정적이 폐쇄된 공간의 무게처럼 나를 덮쳤다.

세상과의 모든 연결이 완전히, 그리고 잔혹하게 끊어진 듯한 깊은 고립감이 전신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칠흑 같은 어둠.
그것은 단순히 빛이 없는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모든 색과 형태, 방향감각마저 무자비하게 지워버리는,
질척이고 무게를 가진 듯한, 살아 있는 것 같은 어둠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봐도, 손을 앞으로 뻗어 허공을 더듬어봐도,
눈꺼풀을 수십 번 떨며 깜빡여도 오직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마치 영원히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혹은 눈꺼풀 안쪽의 가장 어두운 색만이 무한히 펼쳐진 세계 같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축축한 흙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릿하고 음습한 냄새가 폐부 깊숙이, 뇌 속까지 파고들었다.
차가운 습기는 피부와 옷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마치 얼음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발밑은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해,
밟을 때마다 기분 나쁜 마찰음과 함께 질척이는 알 수 없는 물질 위에 서 있는 듯했다.
마치 깊은 늪의 가장자리에 선 것처럼.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짝, 그리고 또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작은 발자국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고 길게, 기괴하게 왜곡되어 메아리쳤다.

사그락, 축축…
질척이는 땅에 발이 닿는 미세한 소리조차 증폭되어
동굴 전체를 흔드는 것 같았다.

나의 거친 숨소리도 크고 어색하고, 기분 나쁘게 울려
동굴의 깊고 원시적인 정적을 깨뜨렸다.
그 소리들이 동굴의 차가운 벽과 높은 천장에 부딪혀 다시 되돌아오자,
섬뜩함을 넘어선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동굴 자체가 살아 있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나의 아주 작은 움직임과 소리까지 예민하게 듣고,
그것을 왜곡해 나에게 돌려주며 조롱하거나 위협하는 것 같았다.

그 메아리는 때로는 비웃는 듯한 조롱의 웃음소리 같았고,
때로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날카로운 속삭임 같았으며,
또 때로는 앞으로 마주할 미지의 공포를 예고하는 불길한 예언처럼 들렸다.

어둠은 모든 것을 왜곡시켰고.
소리는 나를 더욱 괴롭혔다.

손을 앞으로 뻗어 눈으로 볼 수 없는 길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동굴의 벽은 매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울퉁불퉁하고 거친 바위의 손끝, 손바닥, 팔꿈치, 어깨까지 전해졌다.

마치 뾰족한 이빨 같기도 하고, 앙상한 뼈마디 같기도 한 그 바위들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낯설고 일그러져 있었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부분이 손에 걸리거나 옷에 스쳐 살갗을 긁었고,
축축한 이끼에 손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손가락이 움푹 파인 구멍에 빠졌을 땐 섬뜩함이 훅 밀려왔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의 뼈대 같기도,
영원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굳어버린 형상 같기도 했다.

동굴의 통로는 좁고 길게,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때로는 몸을 완전히 숙이거나 옆으로 간신히 비집고 지나가야 할 만큼 비좁았다.

벽이 나를 짓누르는 듯한 폐쇄된 공간에 대한 극한의 두려움,
숨 막히는 압박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이 어둠과 축축한 공간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건 아닐까.
그 불안감이 심장을 날카로운 칼날처럼 조였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퀴퀴한 냄새는 더 강해졌고,
옷 속 깊숙이 파고든 습기는 점점 더 체온을 빼앗아갔다.

동굴은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며, 질식시키는 거대한 생명체 같았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꺼지는 듯했고,
벽이 나를 향해 좁아져 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길을 잃었다는 막막함이 온몸을 감쌌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 감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건 어둠과 축축함, 퀴퀴한 냄새, 왜곡되어 메아리치는 소리,
그리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위의 기괴한 형상뿐이었다.

그때였다.
아주 희미하고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동굴 깊은 곳.
칠흑 같은 어둠의 끝자락에서
마치 생명이 움트듯,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빛.

강렬하지 않았다.
세상의 햇살처럼 따뜻하거나 밝지도 않았다.
눈을 깜빡이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는
한 줄기 생명줄 같았다.
기적처럼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빛이었다.

그것은 인공적인 빛이 아니었다.
아주 작고 미세한 구멍을 통해 간신히, 힘겹게 스며든 햇빛이었다.

바깥세상, 내가 떠나온 섬의 하늘에서 온 낯설지만 분명한 빛.
희미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온기를 품은 햇살이었다.

나는 마치 홀린 듯, 아니면 살기 위한 본능에 이끌리듯
조심스럽게,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빛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는
이 끝없는 어둠과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이정표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탈출구 같기도 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마주할 예고편 같기도 했으며,
섬의 또 다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빛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이리 와, 이곳에 무언가 있어.’

빛을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바위틈을 비집고, 몸을 숙이며, 때로는 기어가듯,
때로는 벽을 짚고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동굴의 어둠은 나를 더 깊은 내면으로,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의 심연으로,
혹은 오래 억누르고 봉인해 둔 감정의 지층으로 이끌었다.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하지만 동굴의 억압적인 고요와 폐쇄성,
끝없이 반항하는 내 소리들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했다.
나 자신과 정면으로, 가차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갔다.

어둠 속에서의 발밑의 축축한 흙과 미끄러운 바위를 밟을 때마다,
울퉁불퉁하고 기괴한 바위에 손을 짚을 때마다,
귓가에 왜곡되어 울리는 메아리를 들을 때마다…

잊고 싶었던, 애써 외면하고 마음 깊숙이 묻어둔 두려움과 아픔이
동굴 벽에 새겨진 섬뜩한 형상처럼,
어둠 속에서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때로는 조롱하고 비난하는 목소리처럼 떠올랐다.

과거의 뼈아픈 실패들,
인간관계에서 입었던 찢긴 상처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시린 외로움,
사랑하는 이를 잃었던 슬픔과 죄책감,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던 끝없는 자기 비난과 존재의 의문들.

어둠 속에서 그것들은 현실보다 더 날카롭게,
더 선명하게 나를 공격했다.

숨이 막혔고, 폐부가 날카로운 바위에 긁히는 듯했다.
이 동굴은 내 가장 깊은 상처와 두려움,
숨겨둔 아픔이 형상화된, 살아 있는 고통 같았다.

주저앉아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존재 자체를 어둠 속에 소멸시키고 싶었다.

동굴의 어둠은 나를 집어삼키려 했고,
메아리는 나를 절규를 비웃듯 왜곡해 영원히 가두려 했다.

온몸이 떨렸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이 어둠 속에서는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오직 차가운 습기만 얼굴에 닿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어둠과 고통 속 여정.

나는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바위에 긁히고,
주저앉아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차가운 벽에 기대 떨리는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저 희미한 빛만 따라 계속 나아갔다.

동굴의 퀴퀴한 냄새와 축축함, 왜곡된 메아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의 일부, 내 안의 슬픔 같았다.

그러던 중,
희미한 햇빛줄기를 따라 걷던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기괴한 바위틈, 모두가 무심히 지나칠 법한 구석.
어둠 속에 숨겨진 작은 보물처럼, 절망 속에서 피어난 기적처럼 빛났다.

그것은 작은 돌 같기도,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작은 보석 같기도 했다.

홀로, 그러나 굴하지 않고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뻗었다.
차갑지만 부드럽고 매끈한 감촉.
손끝에 닿는 작은 온기.

그 순간, 그 작은 감촉과 함께
잊고 있던, 아니 애써 묻어둔 소중한 기억 하나가
동굴 속 희미한 햇빛처럼,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처럼,
길을 잃은 나에게 건네진 따뜻한 손길처럼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조건 없이 나를 아껴주던 사람들의 눈빛과 목소리,
순수하게 빛나던 작은 소망들,
무언가에 설레던 마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느낀 경이로움,
작지만 소중했던 성공의 기억.

어둠과 절망에 잠식될 줄 알았던 내 안에는
여전히 빛나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었다.
지금 이 어둠 속에서 나를 지켜주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마주한 두려움과 아픔은 여전히 컸다.
하지만 그 소중한 기억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은 별,
작은 등불 같았다.

그것은 내가 누구였고,
어떤 가능성을 가진 사람인지
희미하게나마 다시 보여주었다.

나는 그 기억을 가슴에 품고
동굴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햇빛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이 어둡고 좁고 기괴한 동굴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었고, 여전히 두려웠다.

그러나 작은 빛과 소중한 기억 덕분에
희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단단한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나아가기로 했다.
이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그것이 진실이든 더 깊은 어둠이든,
아니면 뜻밖의 기적이든,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동굴의 메아리는 여전히 나를 왜곡했지만,
이제 그 왜곡 속에서도
나만의 진실, 나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굴 깊은 곳에서,
나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
다시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시작은 이 어둠 속에서 움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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