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래 지면의 감촉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해변의 기억은 저 멀리 밀려나 있었고, 발바닥에 닿는 것은 차갑고 거칠며 불규칙하게 솟아 있는 단단한 암석과 끈적한 흙의 조합이었다.
섬의 심장부를 향한 여정은 시작부터 나를 끊임없이 시험했다.
땅은 일정한 형태 없이 뒤틀려 있었고, 발을 디딜 때마다 예상치 못한 깊이로 꺼지거나, 숨어 있던 날카로운 돌기가 튀어나와 발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온몸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집중해야 했다.
근육은 알 수 없는 경고 신호를 보내며 긴장했고, 심장은 불규칙한 리듬으로 불안하게 뛰었다.
주변을 둘러싼 공기의 질감도 완전히 달랐다.
훨씬 더 차갑고 무겁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짙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바깥세상의 소음은 이미 아득히 멀어져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이제 귓가를 채우는 것은 오직 이 낯선 공간 자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들뿐이었다.
잎 하나 없는 앙상한 구조물 사이를 바람이 통과하며 내는 메마르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 발밑의 끈적한 땅에서 기어 다니는 작은 것들의 희미한 움직임,
그리고 저 깊은 어딘가에서 끝없이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낮고 웅성거리는 소음.

그 모든 소리가 이 공간의 낯설고 불안하며, 무언가 거대하고 불길한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극도로 고조시켰다.
침묵은 깨졌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더 많은 의미를 가진, 존재 자체를 흔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의 언어들이었다.

시야가 점차 어둠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주변을 에워싼 거대한 형태들이 빽빽하게 나를 가로막기 시작했고, 하늘의 마지막 희미한 빛줄기마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가려버렸다.

그것들은 일반적인 나무의 모습, 자연의 질서, 세상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유기체가 극한의 고통과 섬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끔찍하게 변형된 것처럼,
줄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묘하고 불규칙하게 뒤틀려 있었고, 껍질은 검고 거칠어 수억 년의 고통에 짓눌려 일그러진 것 같았다.
그 몸뚱이는 어떤 규칙성도, 자연스러운 흐름도, 생명의 건강함도 없이 오직 이 섬의 알 수 없는 근원적 힘과 시간의 무자비한 무게에 의해 무정하게 뒤틀리고 변형된 듯했다.

가지들은 상상할 수 없는 각도로 꺾여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혹은 뒤틀린 손가락처럼, 혹은 비명을 지르는 입처럼, 혹은 절규하는 팔처럼,
나를 잡아당기는 날카로운 갈퀴처럼, 혹의 섬의 깊은 고통을 새겨 넣은 고대의 비문처럼, 혹은 영원히 멈춘 악몽처럼 뻗어 있었다.

잎 하나 없이 앙상한 그 몸뚱이는 검고 거친 껍질로 뒤덮여 있었으며,
마치 살아 있는 존재가 극한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다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어떤 형태는 턱을 괴고 주저앉아 울부짖는 괴물처럼 보였고,
어떤 것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듯 허리를 굽히고 있었으며,
또 어떤 것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비틀다 뿌리째 뽑힐 듯 아슬아슬하게 땅에 서 있었다.

그들은 침묵 속에 거대한 기념비처럼 우뚝 서 있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력하고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며 나를 짓눌렀다.

그들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고, 필사적으로, 처절하게, 온몸의 감각을 극한까지 곤두세우며 지나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깊은 불안과 존재 자체를 뿌리째 흔드는 공포가 전신을 감쌌다.
이곳은 단순히 물리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었다.
섬의 깊고 숨겨진 고통, 과거의 응어리, 억압된 감정들이 형상화되어 현실로 드러난, 살아 있는 듯한 장소.
그리고 그것은 나를 시험하고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섬의 의식이 담긴 공간 같았다.

평생 외면하고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내면의 그림자들, 나의 트라우마와 실패들이 형태를 가져 이 숲을 채우고, 나를 둘러싸며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기괴하게 뒤틀린 형태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때로는 처절하게 몸을 비집고 헤치며 나아갔다.

손으로 거친 무언가를 밀어내고, 몸을 숙여 좁은 통로를 만들며 걸었다.
옷은 날카로운 곳에 걸려 찢기고, 살갗은 긁혀 쓰라렸다.
발밑은 축축하고 미끄러워 발을 헛디딜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간 감각은 점점, 그리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직 앞으로 나아간다는 처절한 행위, 발밑의 불안정한 감촉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숲은 걸을수록 더 깊어졌고, 주변의 형태들은 더욱 압도적이고 기괴하게 변했다.
위에서 들어오던 마지막 희미한 빛마저 완전히 사라져 주변은 영원히 칠흑 같은 어스름 속에 잠긴 듯했다.

발밑은 더욱 축축해졌고, 공기는 차고 습했으며, 퀴퀴한 흙냄새에 비릿하고 썩는 듯한 냄새, 알 수 없는 낯선 향기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감각들은 이전보다 훨씬 예민해져 거의 고통스럽게 곤두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느낌, 낯선 기운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 온몸이 긴장했고,
피부 아래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 속을 걷고 또 걸었다.
나아가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충동, 이 섬의 더 깊은 곳에 무언가 있다는 강한 이끌림,
혹은 단순히 이 억압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적인 절박함이 나를 몰아갔다.

처음엔 그저 기괴하고 무섭게만 보였던 형태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틀린 형상을 더 자세히, 더 오래, 더 깊게, 그리고 내 존재를 비추듯 응시했다.
조금씩, 그들에 대한 날카롭고 도망치고 싶은 원초적 두려움이 아주 미세하게 옅어졌다.

대신 묘한 먹먹함과 함께, 그 뒤틀린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혹독한 환경을 견뎌낸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버텨낸 상처가 보였다.
마치 오래된, 깊이 패인 흉터처럼.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섬뜩하거나 위협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 처연하고, 경이로울 만큼 끈질기며, 묵묵하고, 슬펐다.
그들은 아팠지만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처절한 승리였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그러나 가장 강렬하게, 내 언어로 말을 걸고 있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아팠어, 그래도 살아남았지.’

어둠이 짙어진 이 공간 속에서 나는 땅바닥이나 바위틈, 축축한 나뭇잎 사이,
축축한 표면 위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히,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축축한 땅을 비집고 나온 작은 이끼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녹색을 띠는 곰팡이들,
바위 표면에 힘겹게 뿌리내린 이름 모를 풀들, 미세하게 기어가는 작은 벌레들의 움직임.

그들은 가장 척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이 기괴하고 어두운 숲의 극한 속에서도 묵묵히, 끈질기게, 처절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들이 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어떤 강렬한 메시지, 존재의 이유, 포기하지 않는 의지, 살아남으려는 발악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단단한 가능성이었고, 살아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보니, 차갑고 축축한 이끼 속에서 희미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부드러운 풀잎의 여린 감촉, 미끈거리는 벌레의 작은 움직임.
이 모든 낯설고 거친 환경 속에서 만난, 유일하게 부드럽고 희미하지만 따뜻하며,
그리고 분명히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이 거칠고 낯선 섬에서도, 이 어두운 숲 속에서도 생명은 포기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아직 가능성이 있음을,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아 계속 나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나 역시 이 섬의 일부이자 세상의 일부로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고독하고 처절한 나의 여정에 작지만 의미 있는 동행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그들은 침묵 속에서, 혹은 바람과 작은 움직임 속에서 존재함 자체로 대답했다.
‘살아있다. 여기서. 너와 함께.’

시간이 흘러 이 공간의 더 깊은 곳까지 들어섰을 때, 주변을 감싸는 기운이 미묘하지만 분명히, 그리고 강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형태들의 밀도는 여전히 높았고, 어둠은 여전했지만, 공기 중에 스며든 습기가 훨씬 짙어졌으며,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던 낮고 웅성거리는 소음이 점차 더 선명해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람 소리도 아니었고,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도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 같기도 했고,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섞여 만들어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짙은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수록, 주변의 형태들은 점점 더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땅은 더 축축해졌고, 발밑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났다.
형태들의 뒤틀림은 더욱 심해졌으며, 바위들은 예상치 못한 각도로 솟아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자연적으로 생겨난 공간이 아니라, 어떤 강력하고 원초적인 힘에 의해 뒤틀린, 살아 있는 듯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빽빽한 형태들의 장막과 기괴한 가지들의 얽힘을 필사적으로 헤치자, 시야가 거짓말처럼 탁 트였다.
숨이 멎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움과 동시에, 존재 자체를 흔드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그곳엔 거대한 물줄기가 있었다.
높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 절벽 위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물의 흐름이 아니었다.
마치 하늘의 거대한 혈관이 터져, 그 속의 생명력과 분노, 슬픔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듯한 압도적인 힘이 느껴졌다.

물은 차갑고 투명했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수압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울 만큼 거대했다.
그 거센 물줄기는 아래의 단단한 바위를 부수고 땅을 깊이, 더 깊게 파내며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를 사방 수십, 수백 미터까지 뿌렸다.
그 주변은 차갑고 습한 물안개로 가득 차 시야가 흐릿했다.

웅장한 물소리는 고막을 강하게 때렸고, 그 압도적인 힘은 몸을 넘어 존재 자체를 짓눌렀다.
마치 자칫하면 그 물에 휩쓸려 산산조각 나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원초적인 힘과 위협이 동시에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폭풍과 파괴력이 농축된 것 같은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언제든 쉽게 부서져 사라질 수 있는 한 조각 먼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 거대한 힘 앞에 온전하게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경외감과.
어쩌면 나 역시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여기까지 왔다는 미약하지만 단단한 용기가 솟아올랐다.

물줄기 주변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섬의 다른 곳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기괴함을 넘어선, 섬뜩한 아름다움까지 느껴졌다.

거대한 바위 절벽과 그 아래 땅을 뒤덮은 식물들은,
줄기가 살갗이 벗겨진 듯 징그럽거나 뱀처럼 서로 뒤엉켜 있었으며,
잎은 날카로운 칼날 같거나 독을 머금은 듯 검푸르게 번들거렸다.

이름 모를 꽃들은 섬뜩한 색과 형상으로 피어 있었고,
어떤 식물은 끈적한 액체를 흘리거나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거대한 물줄기의 힘과 이 섬의 기괴함이 뒤섞여 태어난 괴물 같은 식물들이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과 동시에 느껴지는 설명할 수 없는 위험.
이곳은 단순히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섬의 또 다른 어둠과 비밀. 혹은 길들여지지 않은 원초적인 힘이 응축된 장소처럼 보였다.

그 장대한 풍경에 정신을 빼앗겨 멍하니 바라보던 중,
문득 물줄기 옆,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에서
숨겨진 작은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물줄기의 압도감과 위험에 정신이 팔리면 그냥 지나쳐버릴 만큼 작고 어두운 입구였다.
마치 오래된 동물의 입 같기도, 바위가 폭력적으로 찢겨 생긴 상처 같기도 한 그곳은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강렬한 호기심과 동시에 짙은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곳은 비밀스러운 공간의 입구였다.
좁고 어두워 보였으며, 입구 근처에서조차 차갑고 축축한 기운과 곰팡이 냄새가 강하게 풍겨 나오는 듯했다.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고, 그 어둠은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
웅장한 물줄기의 소리조차 그 앞에 서면 먹먹하게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아주 깊은 어딘가, 저 어둠의 끝에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손전등처럼 명확한 빛이 아니라, 야광 생물 같기도 하고,
간신히 스며든 빛 같기도 한 정체 모를 빛.
그 존재만으로도 불안감이 증폭됐다.

그 빛이 과연 희망일까?
아니면 나를 끌어들이는 함정일까?
섬의 더 깊은 어둠으로 초대하는 목소리일까?
아니면 내가 평생 외면했던 내면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들이 기다리는 곳일까?

비밀스러운 틈새 앞에 서자 심장이 더욱 빠르고 미친 듯, 거의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뛰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피부가 차가워졌다.
낯선 곳, 보이지 않는 미지로 발을 들인다는 건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였다.

저 안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날카로운 함정?
독을 뿜는 무서운 생물?
아니면 나를 집어삼키려는 이 섬의 원초적인 힘?
혹은 내가 평생 외면하고 숨겼던 아픈 기억들과 실패들?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공포였다.
발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온몸의 근육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도망치라고 속삭였다.
그냥 이 모든 것을 외면하고 해변으로 돌아가거나, 차라리 절망의 무(無) 속으로 주저앉고 싶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 가장 깊은 곳에서
모든 두려움과 망설임, 도망치라는 목소리를 뚫고 나오는 알 수 없는 강한 울림이 있었다.
섬의 심장부에서 들려오는 고대의 외침 같기도,
내가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원초적인 의지 같기도 한 그것.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아니면 저 희미한 빛에 홀린 듯,
혹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체념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이 외딴 섬에 내던져진 순간부터,
나의 삶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고,
마주해야 할 것들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이 비밀스러운 틈새는 어쩌면 내가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였다.
두려움 속에서도 그 미지를 탐험하고 싶었다.
내 어둠과도 마주하고 싶었다.
그 강한 열망이, 모든 것은 포기하고픈 유혹을 눌렀다.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하겠다.

나는 길고 깊게, 폐부 깊숙한 곳까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습기와 곰팡이 냄새, 알 수 없는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폐로 들어오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심장 박동은 귀를 울릴 정도로 크게, 빠르고 결연하게 뛰었다.

손바닥에는 땀이 흘렀지만, 나는 떨리는 손을 뻗어 축축하고 차가운 입구의 바위를 짚었다.
거칠고 미끄러운 이끼가 손끝에 닿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함께,
새로운 발견과 내면의 마주침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강렬한 기대감이 밀려왔다.

숨을 참고, 나는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킨 틈새 안쪽으로,
미지의 세계로, 떨리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바깥의 물줄기 소리는 순식간에 멀어져 먹먹해졌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얼굴과 머리카락, 옷 속 깊이 파고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의 감촉은 해변의 모래나 숲의 흙과는 완전히 다른, 축축하고 부드러운 무언가였다.

나는 벽을 더듬으며 첫 발을, 두 번째 발을, 그리고 세 번째 발을 내디뎠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고 흔들림 없이.

뒤돌아볼 수 없었다. 도망칠 곳도 없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 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마주하든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의 이야기의 일부로 만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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