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갑고 축축한 해변의 모래 위에서 발을 뗐다.
발바닥에 느껴지던 부드러우면서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불안정했던 감촉,
발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던 모래알갱이들의 느낌이 점차 희미해졌다.
멀리서 들려오던 파도가 부서지는 규칙적인 호기.
희미하게나마 세상과 연결된 듯했던 소음들이 점차 아득해지고,
섬의 내륙을 향해, 미지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완전히 새롭고 낯선 소리들이 귓가를 채우기 시작했다.
해변과 숲의 경계는 뚜렷한 선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짠 기운을 머금은 바닷가 식물들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곧 발밑의 감촉이 확연히, 그리고 되돌릴 수 없게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모래가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흙과 크고 작은, 때로는 숨겨진 칼날처럼 날카롭게 솟은 거친 돌멩이들이 발바닥 전체에 고스란히, 때로는 아프게 닿았다.
땅은 평탄하지 않았고, 발을 디딜 때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거나 예상치 못한 깊이로 꺼지기도 했으며, 곳곳에 튀어나온 날카로운 바위들이 발목을 위협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온 신경을 발밑과 주변에 집중해야 했고,
미끄럽거나 불안정한 땅에 발을 헛디딜 때마다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온몸의 근육에 힘을 주면 알 수 없는 긴장감,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경계심이 감돌았고,
심장 박동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불규칙하게, 불안하게 뛰었다.
발밑에서 나는 소리들은 해변에서 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섬뜩할 정도로 생경하고 거슬리는 소리였다.
흙과 돌멩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마찰음, 알 수 없는 풀들이 밟히며 나는 축축하고 질척이는 소리,
발에 걸린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둔탁하고 건조한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이 공간의 낯설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바람이 잎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 사이를 스치는 스산하고 메마른 소리.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이름 모를 작은 생명들의 희미한 움직임뿐이었다.
외부 세계의 모든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 섬 내부의 원시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어딘가 왜곡되고 변형된 소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것은 침묵보다 더 무겁고, 더 많은 의미를 가진, 알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소리들이었다.
점차 숲이 깊어졌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주변을 에워싸는 나무들의 밀도가 높아졌고,
하늘을 가리는 그들의 존재감은 점점 더 압도적이고 숨 막히게 다가왔다.
처음 보는 형태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나를 에워쌌다.
그들은 일반적인 나무와는 완전히 달랐고, 기괴할 정도로 믿기 힘들 만큼 뒤틀려 있었다.
줄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묘하게 비틀어져 있었고,
껍질은 검고 거칠어 마치 오랜 고통에 짓눌려 형체가 일그러진 듯 보였다.
그 몸뚱이는 어떤 규칙성도, 자연스러운 흐름도 없이,
오직 고통과 시간의 무게에 의해 무자비하게 뒤틀리고 변형된 듯했다.
가지들은 상상할 수 없는 각도로 꺾여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혹은 뒤틀린 손가락처럼, 혹은 비명을 지르는 입처럼,
혹은 절규하는 팔처럼, 혹은 나를 잡아당기는 갈퀴처럼 뻗어 있었다.
잎 하나 없는 앙상한 그 몸뚱이는 검고 거친 껍질로 덮여 있었고,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가 극한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다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어떤 나무는 턱을 괴고 주저앉아 울부짖는 괴물 같았고,
어떤 나무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듯 허리를 굽히고 있었으며,
또 어떤 나무는 공포에 질려 온몸을 비틀다 뿌리째 뽑힐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침묵 속에 우뚝 서 있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력하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나를 짓눌렀다.
나는 그 기괴하게 뒤틀린 나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필사적으로, 때로는 처절하게 헤치고 나아갔다.
손으로 앙상하고 거친 나무를 밀어내고, 몸을 숙여 좁은 통로를 만들며 걸었다.
옷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고, 발을 헛디딜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숨이 멎는 듯했다.
시간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오직 앞으로 나아간다는 행위, 발밑의 불안정한 감촉만이 유일한 현실이었다.
숲을 걸을수록 더 깊어졌고, 위에서 들어오던 희미한 빛마저 거의 사라져
주변은 영원한 땅거미 속에 잠긴 듯했다.
발밑은 더욱 축축해졌고, 공기는 차갑고 습했으며,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비릿하고썩어가는 듯한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감각들은 이전보다 훨씬 예민하게 곤두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느낌,
낯선 기운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온몸의 세포가 긴장했고, 피부 아래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 속을 걷고 또 걸었다.
나아가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충동, 이 섬의 더 깊은 곳에 무언가 있다는 강한 이끌림,
혹은 단순히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이 나를 몰아갔다.
처음엔 그저 기괴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나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틀린 형상을 더 자세히, 더 오래, 더 깊이, 그리고 다른 눈으로 응시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들에게 느꼈던 날카롭고 원초적인 두려움이 아주 미세하게 옅어졌다.
대신 묘한 먹먹함과 함께, 그 뒤틀린 몸속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혹독한 환경을 견뎌낸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버텨낸 상처가 보였다.
마치 깊게 패인 오래된 흉터처럼.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섬뜩하거나 위협적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어딘가 처연하게, 경이로울 만큼 끈질기게, 그리고 슬프게 느껴졌다.
그들은 아팠지만,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처절한 승리였다.
숲 더 깊은 곳에서 나는 땅바닥이나 바위틈, 축축한 나뭇잎 사이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히, 그리고 끈질기게 자리를 잡은 생명들을 발견했다.
축축한 땅을 비집고 올라온 작은 이끼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녹색을 띠는 곰팡이들,
바위 표면에 힘겹게 뿌리내린 이름 모를 풀들, 나무껍질 위를 기어가는 작은 벌레들의 미세한 움직임.
그들은 가장 척박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이 기괴하고 어두운 숲의 극한 속에서도 묵묵히, 끈질기게, 그리고 처절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들이 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어떤 강렬한 메시지를, 어떤 존재의 이유를, 어떤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단단한 가능성이었고, 살아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보니, 차갑고 축축한 이끼 속에서 희미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부드러운 풀잎의 여린 감촉, 미끈거리는 벌레의 작은 움직임.
이 모든 낯설고 거친 환경 속에서 발견한, 유일하게 부드럽고 희미하지만 따뜻하며,
그리고 분명히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이 거칠고 낯선 섬에서도, 이 어두운 숲 속에서도 생명은 포기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나에게도 여전히 가능성이 있음을,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아 계속 나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나 역시 이 섬의 일부로, 이 세상의 일부로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고독하고 처절한 나의 여정에 작지만 의미 있는 동행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그들은 침묵 속에서, 혹은 바람과 작은 움직임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살아있다고, 여기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발걸음은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주변의 어둠은 여전했지만,
이전처럼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진 않았다.
기괴한 나무들은 여전히 나를 에워쌌지만,
그 뒤틀림 속에서 경이로운 끈질김과 시간의 무게,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의지가 보였다.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존재들이자,
아픔 속에서도 버텨낸 생명의 기념비 같았다.
작은 생명들이 보여준 희미한 가능성을 가슴에 품고,
나는 숲의 더 깊은 곳으로, 섬의 더 깊은 심장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었고, 앞으로 무엇을 마주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숲에서의 첫 발걸음, 낯선 환경과의 처절한 조우,
그리고 작은 생명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고, 낯선 소리 속에서 나 자신의 숨소리와 심장 소리를 들었다.
차가운 감촉 속에서 희미한 온기를 느끼며, 이 섬과 함께 존재하고 살아남는 법,
그리고 그 속에서 희미한 희망을 찾는 법을 처절하게 배워갔다.
이 숲은 내 가장 깊은 곳에 말을 걸었다.
나의 존재에.
살아남으라고.
계속 가라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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